매일신문

이덕일씨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조선왕조실록에 3천번 이상 언급될 만큼 역사상 수많은 논란의 대상이었던 우암 송시열(1607-1689).

조선 최대의 당쟁가로 83세의 나이에 사약을 마시고 사사당한 우암은 우리 역사에서 하나의 신화가 되어 있다.

대신(大臣)을 우대한 조선에서 '죄인들의 수괴'라는 죄목으로 사사당할만큼 철저하게 버려지는가 하면 유학자로서의 최대 영광인 성균관 문묘에 공자와 함께 배향되고 송자로 불리는 영광을 누리는 등 역사적 평가가 엇갈린 우암.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를까?

이덕일씨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는 이런 역사적 평가를 낳게한 시대적 배경을 되짚어보고 송시열이라는 인물을 둘러싼 진실을 추적한 역사서다.

책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해보면 극단적인 찬사와 극단적인 저주가 공존하는, 조선 역사상 가장 치열한 당쟁의 시대에 온 몸을 내던진 송시열이 그동안 완전한 인물처럼 왜곡되어 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암을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파탄에 대한 부채를 지녀야 하는 한 정치가의 자리로 끌어내려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우암이 살았던 당시 조선은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었다. 신분질서로는 더 이상 이런 변화를 수용할 수 없었다. 양반의 특권은 폐지되어야 했다.

부농으로 성장한 일부 양민들과 노비들은 양반이나 양인으로 신분을 바꾸었고, 심지어 호적을 고쳐 조상을 바꾸었다. 서얼과 중인들도 소통(疏通) 운동을 전개해 정계에 진출하기도 했다.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들은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주자학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당과 계급의 이익을 위해 역사의 변화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이처럼 주자학을 정치에 어긋나게 적용한 것이 송시열의 비극이었다.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송시열에 대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노론은 그 시대에 대한 공적과 과오가 병존하는 일반적인 정치가로 송시열을 끌어내리려는 모든 정치적, 학문적 시도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해왔다.

그동안 접근조차 금지되어 왔던 한 정치가에 대한 300년의 신화의 가면을 벗겨가는 저자는 당시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정치적 현실, 송시열의 생애 등을 살핀 후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송시열이 사회변화를 실현시키는 데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면 많은 백성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대부 계급의 이익과 노론의 당익을 지키는 데 목숨을 걸었다·"

송시열에게 중요했던 것은 사대부라는 계급의 이익이었고, 서인·노론이라는 당의 이익이었다. 이를 위해 농민과 여성들을 억압받아야 했고, 심지어 송시열은 본관이 다르더라도 동성(同姓)간의 결혼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결국 그의 당인 노론은 조선이 망할 때 까지 정권을 잡았으나 이는 백성들의 나라가 아니라 그들의 나라에 불과했다는 점을 통해 한 인물에 대한 찬사가 얼마나 공허한 것임을 저자는 이 책에서 증명해보이고 있다.

徐琮澈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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