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朴木月)의 시 '산이 날 에워싸고'에는 자연의 품에 안기고 싶은 소망과 체념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이 시가 이 삭막한 시대에 새삼 떠오르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산이 날 에워싸고/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어느 짧은 산자락에 집을 모아/아들 낳고 딸을 낳고/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산이 날 에워싸고/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IMF 체제 이후 도시의 실직자들이 농촌으로 몰려드는 추세였다. 새삶의 터전을 찾아 도시로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흙의 품안으로 되돌가는 행렬이었다. 세파에 시달리다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낙향하는 '현실도피'가 아니라 다시 살길을 찾아서였다.
어쩌면 부모세대의 이농(離農)보다도 절박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에는 목월의 시에서도 부분적으로 노래되고 있듯 체념의 빛깔이 두드러졌으며, 재이농(再離農)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돌아와 안기고 싶어도 기댈 언덕이 너무 낮아 다시 살길을 찾는 발길일 것이다. 전국의 1만7천800여 귀농 가구 중 1천200 가구가 떠났으며,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경북만도 1천150여 가구 중 160 가구가 이미 떠났다. 재이농 증가에 따른 문제도 적지 않다. 심지어 2천만원까지 주어지는 귀농자금을 갚지 못하거나 빚을 남긴 채 '야반도주'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농사를 지어서는 생계를 꾸리기 어렵고, 날이 갈수록 그 사정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 문제, 가족간의 갈등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도시 빈민 문제는 다시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영도 아래 40년간 황야에서 방황했지만 거친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모세가 제시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 대한 꿈이 확고했기 때문이었다.
비전 없이는 한국 농업이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가나안복지'가 아니어도 좋다. 귀농자들의 안이한 자세도 문제지만 도시 빈민 문제와 농촌 일손 부족 문제를 한꺼번에 풀 수 있는 정책이 아쉽기만 하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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