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는 대형이라던 7개 건설회사, 우방·보성·서한·화성·대백…. 이들 회사 현장에서 일하던 인부는 불과 3년 전만 해도 1만1천여명이나 됐다. 그러나 지금은 겨우 3천500명도 밑돈다.
북비산네거리, 평화시장, 안지랑 네거리, 평화시장 등 7개의 대표적인 새벽 인력시장에 모이던 인부도 400여명에서 250여명으로 줄었다.
나머지는 그 후 어디로 갔을까? 무려 8천여명의 행방이 묘연하다. 여기다 근래 와서 또 터지는 부도…. 떠난 사람들도 그렇지만, 남은 자들도 지금 지쳐 걸음떼기마저 힘겹다. 30년 건설인부 최동식(64·비산동)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사람을 정녕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100㎏이 넘는 벽돌 지게 지고 다리 후들거리며 계단을 올라야 하는 그 숨가쁨이던가? 바람이 심하던 날 연장통을 허리에 끼고 그 높은 곳 미끌미끌한 철판 위를 오가야 하던 아찔한 한숨이던가? 출신도 알 수 없는 말단 도급자의 욕지거리였던가?
그렇잖다. 그런 것은 그나마 행복이다. 가족의 배고픔과 버림받은 내 몰골을 바라 봐야 하는 일, 적어도 나에겐 그것이 슬프고 힘들다.
새벽 일찍 인력시장으로 나왔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일할 곳을 구하지 못했다. 시계 바늘은 벌써 일곱시 반을 지나쳤다. 더 이상 일감이 없으리라는 것 쯤은 일곱시에 벌써 눈치챘었다. 그러나 툴툴털고 일어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여태 웅크리고 앉아 있다. 지난 며칠간은 비가 내려 허탕이었고, 어제·오늘은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를 그저 최씨라고만 부른다. 남들처럼 번듯한 이름도 있지만 쓰임새가 없다. 아침에 만났다가 저녁이면 헤어져야 하는 처지.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지 않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대구 반고개 새벽 인력시장에 나오기 시작한 것이 올해로 13년을 넘었다. 그 전엔 원대오거리를 찾았었다. 한때는 내로라하는 큰 건설회사의 하청 일을 몇년간 꾸준히 한 적도 있었다. 그때는 내가 진짜 월급쟁이가 되기라도 한듯 해 무척 행복했었다. 그때까지 합치면 일일 노동시장에 뛰어 든 것도 거의 30년은 돼 가는 셈이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이 판으로….
1980년대 중반, 건설 경기가 한창 좋았던 시절에는 일당으로 8,9만원은 받았다. 달리 가진 재산이 없는데도 자식들 학교 공부나마 시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 덕분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일당 4, 5만원 짜리 일거리도 찾기 힘들다. 철근 일과 콘크리트 치는 일이라면 누구 못잖게 자신 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비오는 날 빼고 한달 꼬박 반고개 새벽 인력시장으로 나온다. 하지만 정작 일감이 주어지는 날은 열흘도 채 못된다.
다른 사람들이 이제 출근을 서두르는 일곱시. 그 반대로 다시 집을 향해 터벅터벅 돌아가는 내 꼴이란 가엾다 못해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 마저 든다. 일이 없는 날엔 하루 종일 막걸리 집에라도 앉아 시간을 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주머니에 천원짜리 두 장 달랑 넣고 도대체 어디 가서 막걸리 나마 마실 수 있단 말인가!
3년 전 IMF가 터지기 전만 해도 반고개 인력시장을 찾는 사람은 40명을 훨씬 넘었다. 지금은 고작 25명 정도가 오갈 데 없어 자리를 지킨다. 그 중 팔리는 숫자는 고작 15,6명 정도. 대구의 큰 건설업체들이 앞다퉈 허물어진 뒤에 나타난 상황이다. 큰 업체가 없으니 하청 업체도 사라질 수밖에.
게다가 요즘엔 늙었다는 이유까지 겹쳐져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늙었다고? 뙤약볕 아래서 일한 탓에 얼굴이 타고 이마에 깊은 골이 패었을 뿐, 나에겐 아직 힘이 넘친다. 내게는 젊은이들이 갖지 못한 경험도 있지 않은가. 소나무 등걸 같은 내 팔뚝을 보라! 내 나이 64살에 이르렀지만, 내 앞에 선 젊은 기자와 씨름이라도 한판 붙는다면 금세 내동댕이 칠 자신이 있다.
몇달 전 처음으로 반고개 인력시장에 나타났던 한 젊은 친구가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30대 중반인 그는 걸핏하면 대구를 떠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고향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일감이 없으니 속이 터져 그러려니 했었다.
아마 그는 지금쯤 소원대로 서울이나 인천 어디인가에 일자리를 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타향으로 떠나는 젊은이들을 수 없이 봐 왔다. 젊은 그들에게는 아직 기회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아! 신선한 가을 아침.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그러나, 길바닥에 내버려진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나?
曺斗鎭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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