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초(楚)나라 사람 접여(接輿)는 미치광이 행세를 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당시 백성들은 폭정에 시달리며 굶주렸다. 이를 고쳐보려고 공자(孔子)가 초나라를 찾아갔다. 그 때 접여는 도덕을 앞세운 일은 부질없으니 그냥 돌아가라는 내용의 노래를 불렀다. 공자는 그를 면전에서 만나지는 못했지만 속뜻을 헤아리고 현자(賢者)임을 알아차렸다.
예부터 마음이 큰 치자(治者)는 듣기 싫은 말도 헤아려 들었다. 그러나 속이 좁은 치자는 달콤한 말에만 귀를 기울인다. 간신들의 말에 놀아나고, 바른 말과 남을 사랑하는(仁) 진실은 박해받기도 한다. 패를 갈라 자기 편이면 좋아하고, 남의 편이면 싫어한다.
◈만신창이된 한국경제
공자는 평소 그런 치자들에게 덕풍(德風)을 불게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소인 정치를 했던 치자들은 공자가 아무리 주장해도 아랑곳없이 백성의 허리띠만 졸라매게 했다. 그같이 암담한 세상과 정치 현실을 꿰뚫어보았던 접여는 차라리 미친 척하면서 깃털보다 가벼운 행복을 찾아 나서고, 땅보다 더 무거운 불행을 물리치려고 몸부림치기도 했다.
새삼스럽게 이같이 케케묵은 옛날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늘의 정치 현실도 이같은 이야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느낌 때문이다. 또한 '현대판 광접여(狂接輿)'가 안 나온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의 현실은 초나라와 같은 폭정 속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총체적 난국의 어두운 그림자로 온통 뒤덮여 있다. 국제원유가 앙등, 반도체 가격 폭락, 포드의 대우차 인수 포기, 물가 폭등, 주가 대폭락 등으로 다시 제2의 국제통화기금 악몽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는 겁에 질려 있다. 게다가 한빛은행 불법대출 스캔들,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 의약분업 갈등, 파행 정국 등으로 나라의 장래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형편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같은 위기를 수습하고 극복하려는 의지가 과연 있는지, 백성들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기나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얼마 전부터 최고 통치자가 민생을 외면한 겉치레 정책과 번드르르한 말만 앞세우고 있다는 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지나치게 대북정책에만 매달려온 나머지 국정 운영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비난마저 쏟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해온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은 부진하기 짝이 없다. 정파의 이익만 추구하는 정치권도 소모적인 정쟁만 일삼을 뿐 시급한 경제 관련 법안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더구나 지난 18일 주가 폭락으로 날아간 돈이 무려 23조원이나 된다니 기가 막힌다. 이 돈은 대우차를 몇 번 인수하고도 남는 금액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정부는 과연 무슨 말을 해도 믿음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가 살아야 경제가 산다
현대 문제는 얼버무려져 언제 터질지 모르고, 대우 문제도 이렇다 할 해법을 찾지 못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는 공염불에 머물고 있으며, 벤처기업들 역시 고사 위기에 놓여 있다.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해 은행 부실은 가속화되고, 공적자금 투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더욱 큰 문제는 정부.여당의 신뢰감 상실과 위기 관리 능력 부재다. 이따금 장밋빛 전망을 띄우지만 '눈감고 아웅'하는 식이며, 그 때문에 정부를 믿는 사람들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민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부의 의지와 국정 운영 능력 갖추기, 민심을 추스르는 신뢰감의 회복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최고 통치자는 백성들의 소리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세상을 다스릴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민심을 깊이 헤아리고, 접여의 노래도 들을 줄 알아야만 한다. 현자(賢者)가 걸어가는 길을 막는 치자(治者)가 되레 입으로만 자유.평등.박애를 부르짖게 마련이다. 헛소리와 거짓말을 늘어 놓는 치자들이 있는 한 접여의 노래는 거짓 세상을 비웃으면서 백성들의 귓전에 바람처럼 스치고 다닐 것이다.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위기를 뛰어넘으려는 강한 의지와 적극 대응하는 능력을 회복하는 정부.여당의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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