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퇴진과 동교동계의 향배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의 퇴진은 현 정권 창출의 본산이자 여전히 권력의 핵심세력인 이른바 동교동계에 심각한 타격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그 정치적 의미는 적지 않다.

한빛은행 불법대출 의혹과 관련, 사임 압력을 받아온 박 장관 퇴진의 파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최측근 한 사람의 낙마(落馬)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동교동계는 들끓는 퇴진여론에도 불구하고 앞장서 퇴진불가론을 외쳤고 그 맨 앞에는 동교동계의 맏형인 권노갑 최고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권 최고위원은 박 장관의 퇴임 바로 하루 전까지 그의 결백을 주장하며 퇴진론을 일축했다.

민주당의 살림살이를 담당한 김옥두 사무총장 역시 끊이지 않는 당직 개편론에서 0순위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와중에도 박 장관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 궁지에 몰리게 됐다.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도 같은 노선이었다.

때문에 박 장관의 퇴진으로 여야 대치정국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고 그 빈 자리를 박 장관의 퇴진을 주장한 비동교동계 중진과 초·재선급 신진세력들이 대신할 것이라는 전망이 자연스레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단기적인 전망일 뿐이다. 박 장관의 퇴진이 곧 동교동계의 퇴조와 비동교동계와 소장파의 득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검제 수용 여부와 한빛은행 사건 처리 등 향후 정국 해법과 당직개편을 전후한 강경과 온건으로 대별되는 두 세력의 갈등 내지 충돌도 예고되고 있어 전망을 어렵게 하고 있다.

또한 김 대통령의 동교동계에 대한 믿음에 변화가 있다는 정황증거가 아직 없는데다 여전히 주요 포스트에 광범위하게 동교동 인사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동교동계의 퇴조를 점치는 것은 속단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한화갑 최고위원이다. 최고위원 경선에서 동교동계의 대표선수로 출전,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한 한 최고위원은 박 장관의 거취에 대해 철저히 중립을 지켜 동교동계 핵심 인사 가운데는 개인적으로 충격파가 가장 덜하다는 평가다.

특히 민주당 내에서 박 장관 퇴진론에 무게를 실은 인사들 대부분이 한 최고위원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때문에 동교동계의 퇴조보다는 전당대회를 계기로 불거진 권 최고위원과 한 최고위원을 필두로 한 동교동계 내부의 분화라는 측면에서 여당의 권력지도가 변하고 있다는 해석도 만만치 않다. 李東寬기자 llddkk@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