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향수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귀에 익은 정지용의 시 '향수' 중 후렴구이다.어린아이들이 물놀이와 시소 타기를 좋아하는 것은 향수의 발로라고 한다. 열 달 동안 어머니 뱃속의 양수 속에서 흔들리며 지냈던 그 시절이 그리워 그런다는 것이다.

처칠은 자신이 죽으면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고향의 언덕에 묻어 달라고 했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국립 묘지보다 고향 마을동산이 더 소중한 안식의 터전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인생의 가슴을 채워주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향수라는 얘기다.

요즈음 어린이들의 입에서 동요가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동요는 향수를 일깨워주는 노래가 아니던가. 그 속에는 개구쟁이 우정담도, 수줍은 사랑 얘기도 모두 소슬바람 같은 그리움으로 용해되어 있다. 사람은 반추하는 존재이다. 과거를 되씹으며 오늘과 내일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가슴속에 생동하는 향수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는 그가 살아 온 생애의 단층이 얼마나 깊고 넓고 높은가를 측정해 준다. 정녕 꿈에도 잊혀지지 않는 고향이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가. 눈만 뜨면 아파트와 고층 빌딩이 그어놓은 직선의 무미한 생활공간, 그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모두가 실향민이나 다를 바 없다.

마음속의 고향을 찾아가자. 추억의 그 길에는 역시 지절대는 실개천과 얼룩배기 황소가 있고, 동구밖에는 잠시 쉬어 가는 정자나무도 우뚝 서 있을 것이다. 그 그늘 아래 작은 평상은 여름의 노래가 흐르던 곳이다. 이 가을, 허허로운 가슴을 해맑은 향수로 채워보자. 하늘은 점점 멀어져 가고, 우리에겐 맑고 고운 시간들이 다가 오고 있다.

경북대 국어국문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