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바스크 유혈 분쟁 32년

지난 24일 스페인 산 세바스티안에서는 수만명의 인파가 바스크 무장 독립운동 단체 ETA의 테러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ETA가 사흘전 바르셀로나 근처에서 한 지방의원을 암살한 것을 비난하는 집회였다. 그러면서 시위대는 지난 32년 동안 수백명의 인명을 앗아간 테러를 이제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잇따르는 테러 규탄 시위=시위 행진은 희생자 가족들에 의해 인도됐으며, 현지 신문에는 시위를 지지하는 각계 각층의 서명이 잇따라 광고로 게재됐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호세 사라구마와 귄터 그라스도 참여했다. 그 이틀 전 바르셀로나에서도 벌어졌던 이같은 시위는 최근 몇년 사이 스페인의 일상적인 일이 됐다.

이 나라 내무부에 따르면 ETA의 32년에 걸친 무장 투쟁 과정에서 희생된 이는 무려 781명. 이때문에 스페인에서 바스크 문제는 항상 '뜨거운 감자'였으며, 시민들은 이 지루한 싸움이 하루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며 불안에 떨고 있다.

◇바스크족=스페인과 프랑스의 일정 지역에 몰려 사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토착 민족.

비스케이 만과 피레네 산맥 서쪽 기슭의 바스크 지역이 주 분포지이다. 바스크의 80%는 스페인, 20%는 프랑스에 속해 있다. 총 면적은 경상북도 정도인 2만664㎢. 피카소의 유명한 그림 '게르니카'는 바스크 지역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에서 벌어진 나치 정권에 의한 1천540여명에 이르는 바스크족 학살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인구는 300만명. 신체적으로는 다른 유럽인과 큰 차이가 없지만 언어는 다르다. 스페인 영내에서 이들의 거주지는 바스크 자치 공동체로 지정돼 있다. 그 전에도 오랫동안 자치를 누려 왔으며, 프랑코 총통에 의해 강제 합병된 뒤 독재기간(1939~75년) 동안은 강력한 중앙 통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1975년 스페인에 자유주의적 군주제가 성립하자 다시 어느 정도의 자치가 허용됐다.

◇무장투쟁=그러나 자유와 자치 확대 폭이 작다고 생각하는 바스크 세력들은 ETA 같은 강경 군사조직을 만들어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며 해방운동을 벌이고 있다.자기들 말로 '바스크 조국과 자유'라는 뜻의 무장 독립운동 단체 ETA(Euskadi Ta Askatasuna)는 유럽에서 가장 악명 높다. 1958년에 조직한 뒤 1968년 비밀경찰 암살을 시작으로 40여년 동안 수많은 살상 외에도 70명을 납치하고 수천명을 다치게 했다. 정치인·경찰관·판사·군인 등이 주표적이나 민간인 희생도 많았다.

1980년에만 118명이 숨졌고, 1995년에는 현재의 스페인 수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기도 했다. 1998년에 휴전해 평화의 희망이 무르익는 듯 했지만, 채 일년을 가지 못했다.

◇ETA 운영·지도자=소속원들은 리비아·레바논·니카라과 등에서 훈련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IRA(아일랜드공화군)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규모는 수백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재정은 납치, 은행강도 같은 '혁명세'로 충당한다.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최고 지도자는 아레기. 1970년대 중반 특수부대 요원으로 이 조직과 인연을 맺었고, 1992년 이후 ETA를 사실상 이끌어 왔다. 1995년의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 암살 미수사건의 배후 조종 혐의도 받는 등, 지금까지 4차례나 체포영장이 발부됐었다. 지난 15일 프랑스에서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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