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현장-경북 오페라단 '무영탑'연습장

오후 4시에 시작된 연습은 시작한지 6시간을 훌쩍 넘긴 밤 10시가 되어서야 끝을 맺었다. '경북오페라단(단장 손희정)'이 오는 29일부터 공연하는 창작 오페라 '무영탑'의 연습이 한창이던 지난 22일 저녁 무렵, 대구시 남구 대명동의 한 건물 3층.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을 가득 메운 연기자들은 실제 석탑을 쌓는 것만큼이나 힘든 연습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흔들거리지 말고 바로 서서 연기하세요. 당시 석탑은 요즘처럼 전문가 집단에 의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 석공들이 뚝딱거려 만들어냈어. 석수장이의 프라이드(pride)를 가지란 말이에요"

이 오페라의 첫 장면인 일꾼 3명의 등장에서부터 연출자 장수동씨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이름도 없이 단지 '일꾼'으로만 나오는 연기자에 대해서도 꼼꼼한 지적은 여지없다.

멋쩍어하는 '일꾼' 연기자들. 이내 자세를 고쳐 다시 노래를 해보지만 연출자의 'OK'사인은 스쿠루지 영감만큼이나 인색하다.

한 쪽 구석에서는 이 오페라의 주인공 '아사달'역을 맡은 테너 박범철씨가 '아사녀'를 그리워하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보인다. 우람한 몸집에서 나오는 '큰 소리'. 입을 빠져나온 '목소리'는 단숨에 천정까지 치고 올라가 Bb을 때려낸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박수를 쏜다. 동료연기자들은 비록 연습중이었지만 좋은 소리에 대한 찬사와 격려를 잊지 않고 있었다.

연습중이라 모든 출연자가 무대 의상을 입고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몇몇 출연자가 보여준 의상도 눈길을 잡아끄는 부분.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통일신라시대의 복식을 재현해낸 것.

무대의상을 맡은 박명애(42·여·경일대 의상과)교수는 "각종 문헌과 현재 전시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 의상을 참고하는 등 역사적 고증을 거쳐 만들었다"며 "당시 일꾼들이 입었던 옷처럼 문헌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들은 팔뚝에 토시를 씌우는 등 현대적 감각도 살렸다"고 말했다.

연습시간 내내 흘러나왔던 음악(작곡 이승선 계명대 교수)은 전반적으로 꽤 익숙하다고 느낄만큼 어렵지 않은 곡들. 이 오페라의 하이라이트가 될 마지막 장면에서의 아사달의 노래는 서양음악 장르인 오페라에 등장하는 것이지만 우리 고유의 국악냄새가 한껏 배어난다.

오페라와 뮤지컬을 구분하지 못할만큼 오페라와 친하지 않은 '음악 초보자'들이 들어도 그리 어렵지 않은 작품. 특히 이번 공연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00 축하기념공연 성격이어서 오페라의 작품성 못지않게 대중성도 염두에 둔 듯했다.

이 작품에 '우손'역으로 출연하는 테너 이종민(32)씨는 "서양 오페라가 화려하고 힘이 느껴진다면 이 작품은 서정적이고 감미롭다"며 "연기자로서도 만족하는 작품"이라고 전했다.

'무영탑'은 오는 29일부터 사흘동안 매일 오후 7시30분, 1차로 무대를 올린 뒤, 다음 달 6일부터 사흘동안 다시 2차무대를 갖는다. 장소는 경주 불국사 경내 야외무대. 주최측은 특수효과를 곁들인 무대장치를 설치, 극의 완성도를 한껏 높일 예정이다.

한편 이 작품에는 일반 오페라 제작비의 2배가 넘는 무려 3억여원이 투입됐으며 출연연기자와 경북오페라단합창단, 선재소년소녀합창단, 장유경무용단, 경북오페라단오케스트라, 스탭 등을 포함해 270여명이 참여한다.

주역인 아사달역에 테너 박범철·여정운·김태근씨, 아사녀역에 박희숙·은재숙·윤수정씨 등 주요 배역은 공연때마다 출연자가 바뀐다.

R석 3만원·S석 1만5천원·입석 5천원 등이며 입장권은 대구은행 전국 영업점에서 살 수 있다. 1회 공연에 1천300명 수용 가능. 야외오페라여서 비가 오면 공연은 취소된다. 문의 053)620-2096, 054)740-7017.

崔敬喆기자 koala@imaeil.com---무영탑은 어떤 내용

'무영탑(부제 '아사달과 아사녀'·대본 김일영 경산대 교수)'은 현재까지도 경주에 남아 있는 '석가탑'의 건축과정을 둘러싼 애달픈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시간적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1천200여년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약 100년정도 경과한 때.

부여의 시골 석수장이 아사달은 석탑을 세우려는 신라 중앙정부의 계획에 따라 서라벌로 온다. 하지만 아사달은 고향에 두고 온 아내 아사녀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히고 자신을 사랑하는 신라 귀족의 딸 금비의 연정에 심적 갈등을 느낀다. 게다가 옛 백제인이라는 이유로 아사달에게 쏟아지는 박해.

한편 아사녀는 사비성에서 아사달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 결국 서라벌로 떠난다. 서라벌에 도착한 아사녀는 아사달을 만나지 못한 채 영지에서 탑이 완성되기만을 기다리고, 아사녀가 왔다는 소식을 접한 아사달은 마침내 탑을 완성하고 그녀가 기다리는 영지를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아사녀를 마음에 품어온 사비성의 호족 고모래가 아사녀에게 아사달의 죽음을 거짓으로 알리고 충격을 받은 아사녀는 영지에 몸을 던진다. 뒤늦게 도착한 아사달. 그는 유령이 되어 나타난 아사녀를 따라 점점 깊은 못속으로 다가가고 만다.

---무영탑 감독 김돈 교수

"이번 무대는 천년 고도 경주에 자리한 불국사에서 열립니다. 국내 어떤 오페라보다 강렬한 현장감을 느낄수 있을 겁니다"

29일 무대를 여는 경북오페라단의 야외오페라 '무영탑'을 감독한 김돈(44·계명대)교수는 정성들여 만든 무대임을 여러번 강조했다. 1년이 넘는 제작준비기간, 3억여원이 넘는 제작비 등 물리적으로도 엄청난 규모지만 이번 작품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것.

"'무영탑'은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백제사람과 신라사람 이야기를 빗대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지역갈등 해소를 바라는 내용이 들어있고, 5각관계를 담은 남녀간의 사랑도 담겨 있습니다. 음악적으로는 대중성있는 '소리'를 담아 오페라의 대중화를 선언하는 작품으로 삼았습니다"

김교수는 경북오페라단의 창단작품이기도 한 이번 작품준비과정에서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연습실을 구하지못해 오늘은 이 연습장, 내일은 저 연습장을 전전했죠. 이제는 다행히 연습실을 하나 구해서 떠돌이 신세를 면하게 됐습니다"

한편 김교수는 창단공연에 이어 내년에는 구미·김천·포항 등 상대적으로 공연이 뜸했던 지역을 방문, 순회공연도 펼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