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돌아온 추수의 계절,비탄에 잠진 고령들녘

높은 하늘과 찬란한 태양속에 황금 알곡이 착실히 영글어 가고 있는 가을 들녘. 그러나 수마가 훑고 지난 간 고령읍 우곡면 포리와 객기리 들판은 회색빛 진흙탕으로 뒤덮인 채 적막한 바람만이 을시년을 더하고 있었다.

지난 15일 태풍 '사오마이' 내습으로 보수중에 있던 봉산제방이 터지면서 이 제방과 옛 제방 사이 25ha가량이 삽시간에 물 천지가 된 지 열사흘째. 범람한 낙동강물은 말랐지만 벌은 이 곳 온 천지를 30cm두께의 벌밭으로 바뀌어 놓았다. 그 아래로 처참하게 망가진 비닐 하우스와 부서진 경운기, 화물트럭, 시꺼멓게 흩뿌려진 벙커 C 기름띠….

포탄맞은 전쟁터같은 이 곳에서 농민들에게 '재기의 삽'을 바라기엔 애시당초 터무니없어 보였다.

"20년간 남의 땅 빌려 농사지으며 돈을 모아 지난 97년 1천400평 땅을 구해 9동을 연동해 하우스시설을 갖추고 멜론을 심어 놓았는데, 전 재산을 날린 셈입니다"

사고 제방 마주편 길에 설치돼 10여 피해 주민들이 모여 있는 '봉산제방 붕괴사고 피해보상 대책위원회'에 쪼그려 앉아 있던 전기영(44.객기리)씨. 시설자금으로만 2억원을 들인 그는 절규하고 있었다. 포리와 객기리를 통털어 그가 최대 피해자. 100% 피해를 본 그이기에 자연재해대책법과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라 주어지는 이재민 구호(1인1일 2천161원 3개월=19만4천484원), 생계지원(10가마 145만2천원), 중.고생 학자금 면제(1인당 6개월분), 영농.어, 양축자금 상환연기 및 이자감면(2년분) 등의 간접보상과 대파대(ha당 142만여원), 농약대(ha당 4만9천여원) 등과 파괴된 비닐하우스(200평 1동당 500만원)등 직.간접 보상 혜택은 다 보지만 산정결과 받을 것이라고는 4천여만원이 고작. 피가 마르고 있었다.

피해가 전씨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피해 주민들도 보상의 옹색함에선 다를다 없었다. 전정규 피해보상대책위원장은 "현재 이 곳에서만 170여 ha, 200여 농가가 침수피해를 입어 피해액이 20억원 가량에 이르고 있지만 현재 계상된 보상금은 모두 1억9천여만원뿐"이라며 코웃음쳤다.

신.구 제방 사이 3천900여평 벼농사를 짓다 쌀 한톨 못 건진 김원석(54.포1리)씨는 벌밭이 된 자신의 논을 보여주며 "이 곳엔 오기도 싫다"고 치를 떨었다. 그러곤 15일 당시 수문 보강 공사를 하다 제방이 터진 곳에서 다시 부지런히 포크레인을 돌려대는 공사현장을 가리키며 "피해 논밭은 내 팽개둔채 물도 이미 다 빠졌고 비가 올 계절도 지난 저 곳은 열심히 복구중"이라며 정부의 앞뒤 안맞는 처사에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은 이에따라 잇따른 '봉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고 당시부터 인재(人災)임을 강조했던 피해주민들은 때문에 자연재해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재를 불러 들인 측을 대상으로 피해를 보상받겠다는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제방이 터지기 직전 인근 주민이 그 사실을 전했고 당시 시공사측 포크레인 기사만 있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어요. 다른 직원도 있었는데 태무심했고요. 또 지난 해 낙동강 수위가 1m이상 더 높았을때도 멀쩡했던 제방인데, 보강 공사한답시고 우수기를 택해 터진 것은 누가봐도 시행자인 부산국토관리청이나 시공사가 제대로 일하지 않은 때문입니다" 피해주민들의 이구동성이었다.

전 위원장을 비롯한 200여 피해 주민들은 29일 고령군청 옆에서 농기구대신 플래카드를 치켜들고 첫 시위에 나서 일단 군청이 이를 중재토록 압박했다.

"그래도 안되면 복구 공사도 중단시키고 부산국토관리청에 몰려갈겁니다. 법정 소송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전 위원장의 말에 할켜진 농심으로 맥놓고 있던 피해 농민들도 눈을 부릅떴다.

고령.金仁卓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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