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통상 크게 팽창

오늘은 한국과 러시아(당시 소련)가 수교한 지 10주년 되는 날. 시작은 다분히 상대방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동경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양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있었던 것에는 당시의 세계화 추세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양국의 이해 관계가 맞았던 것이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은 한반도 안정을 위해 무엇보다 러시아의 도움이 필요했고, 러시아의 고르바초프는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외국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

양국은 수교에 앞서 1989년 서울과 모스크바에 각각 상공회의소와 한국 무역관을 개설, 경제 분야 협력을 먼저 시작했다. 이어 199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양국이 정상 회담을 갖고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 9월30일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정식 수교를 이뤘다.

같은 해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했고, 고르바초프는 이듬해 한국을 답방했다. 또 1995년 러시아는 북한과의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어느 한쪽이 침략 받을 경우 군사를 포함해 모든 분야의 지원을 자동 제공한다는 조약)을 폐기했다. 한국으로서는 이로써 눈엣가시 같던 걸림돌을 제거한 셈.

수교 이후 양국은 30억 달러의 차관 상환, 서울의 정동 러시아 공관부지 보상, 사할린 한인문제의 처리 등에서 마찰을 빚었다. 한반도 4자회담에서 제외되자 러시아가 이론을 달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사이가 더 냉각됐다. 양국간 교역이 주춤해지고 한국의 대러 투자도 식었을 뿐 아니라, 러시아에서는 개혁 실패 상실감으로 수구세력까지 등장, 여러 나쁜 요인들이 맞물렸다. 이때문에 1998년엔 사상 초유의 양국간 대규모 외교관 맞추방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는 분열과 민주화 혼란을 거듭해 온 러시아가 신흥 한국에게 대국의 자존심을 번번이 굽혀야 했기 때문일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옐친 대통령 시절 큰 호전이나 반전 없이 지속돼 온 한국과 러시아 외교관계가 푸틴의 등장으로 상당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친서방·친한국 외교정책을 고수했던 옐친과 달리 푸틴은 전방위 외교를 펼치기 때문.

푸틴은 지난 7월 러시아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 러시아의 한반도 외교가 과거처럼 한국 일변도가 아니라 남북한에 동등한 비중을 두고, 어떤 의미에서는 북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시사한 것.

1991~96년 사이, 수출입이 각각 연간 300% 이상 초고속으로 성장할 만큼 양국 경제·통상 관계는 크게 팽창했다. 연간 교역액이 37억8천만 달러에 달했던 1996년을 피크로 하락세를 보이긴 했으나, 최근 다시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앞으로 양국은 한반도의 경의선과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연계,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 나홋카 전용공단 조성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어떤 형태로든 경제 협력을 더욱 늘리고, 양국 관계도 가일층 발전시키지 않을 수 없는 관계인 셈이다.국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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