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실기업 정리 절차

금융감독원이 부실기업 판정 세부지침 마련에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확정, 채권은행들에 통보함으로써 2단계 기업구조조정이 본격화됐다.

'국가경제에 부담이 되는 부실기업 정리의 마지막 기회'가 될 2단계 기업구조조정의 성패여부가 바로 은행권의 투명하면서도 객관적인 부실기업 선정에 달린 만큼 정부는 채권은행들이 그동안의 미온적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평가작업을 벌일수 있도록 독려한다는 방침이다.

◇부실기업 판정 투명성이 관건=정부는 채권은행들이 그동안 추가적인 손실발생과 이에 따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하락을 우려, 부실기업을 떠안아 왔다고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정부가 부실기업 판정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채권은행들이 세부지침을 마련, 투명하고 객관적인 잣대로 신용위험을 평가토록 한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은 우선 7월말 현재 금융기관 총신용공여 규모가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을 판정대상으로 삼도록 하고 있다.

다음 단계로 이를 모집단으로 해 △신자산건전성분류(FLC) 기준 '요주의' 등급이하이거나 △최근 3년간 연속으로 이자보상배율이 한배 미만이거나 △각행 내규에따라 부실징후기업으로 관리중인 기업체 등을 최종적인 부실기업 판정대상으로 한정짓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채권은행들은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으로 평가대상을 선정한 뒤 '신용위험점검 세부기준'을 이달 중에 마련, 부실기업 선정에 착수하게 된다.

세부기준에는 산업위험, 영업위험, 경영위험, 재무위험 및 현금흐름 등 질적요소가 종합적으로 반영되며 은행별로 여신정책이 다른 것처럼 은행에 따라 기준이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다.

질적요소중 산업위험은 해당 기업체가 속한 업종의 전망 등을 고려하는 기준이고 영업위험은 시장점유율 등 업종내에서 기업체가 차지하는 지위가 반영된다.

경영위험은 최고경영자의 자질과 경영행태 등을 판정하는 요소다.

부실기업 판정의 대원칙은 그 기준과 절차가 투명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채권은행별로 여신취급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된 임직원을 배제한 가운데 10인 내외로 '신용위험 평가위원회'를 구성해 평가작업을 실시토록 했다.

또 여러 채권금융기관간 효율적인 의견조율을 위해 채권금융기관간 협의체도 구성할 방침이다.

◇몇 개 업체가 정리될까=시장의 관심은 내달 중 몇 개 업체가 퇴출될 것인가하는 점이지만 정부는 금융기관이 객관적 기준에 의거, 자율적으로 이를 판단할 때까지 구구한 억측을 경계하고 있다.

다만 부실기업 판정대상으로 분류되는 기업은 우선 총신용공여규모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모집단)이 740개 정도 되는 것으로 정부는 사전 시뮬레이션을 통해 파악했다.

이중 FLC상 요주의 이하, 이자보상배율, 각행 내규로 관리중인 기업 등 2단계기준을 적용한 결과 최종적으로 부실판정 대상으로 분류되는 기업은 워크아웃, 법정관리, 화의 진행중인 기업들을 포함, 150∼200개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결국 이들 150∼200개 기업들의 회생-퇴출기업의 운명이 갈리게 되는데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과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1차 기업구조조정때의 55개보다 많은 기업이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

◇11월중 자금지원-퇴출 운명갈려=채권은행들은 부실기업 선정작업을 이달 중 마무리짓고 내달부터는 회생기업과 퇴출기업에 대한 조치에 들어가게 된다.

우선 신용위험평가결과 정상영업이 가능한 기업과 유동성문제가 일시적인 기업에 대해서는 채권은행들이 책임지고 자금을 지원토록 했으며 정부는 자금지원 준수여부를 확인하고 불이행시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유동성문제가 구조적으로 발생한 기업에 대해서는 조치방법이 두 갈래로 나뉜다.정부는 유동성문제가 구조적으로 발생했더라도 자구계획을 통해 회생이 가능한 기업에 대해서는 주요 채권기관이 출자전환 등을 통해 회생방안을 강구토록 하는 한편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한 기업으로 판정되면 법정관리, 기업구조조정회사(CRV)로의 이전, 청산, 합병, 매각 등 공개적인 절차에 의해 정리토록 유도할 방침이다채권은행으로부터 출자전환을 받는 경우는 대주주의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감자를 실시토록 하고 경영진도 퇴진토록 하는 등 손실분담 원칙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부실기업 '면죄부' 지적도 비등=2단계 기업구조조정의 '첫 단추'가 되는 부실기업 판정 가이드라인만 놓고 보면 이번 조치가 오히려 부실기업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구조적으로 유동성에 문제가 발생한 기업에 대해서도 출자전환을 통해 회생의 기회를 준다는 부분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워크아웃, 화의절차 등을 통해 채무조정을 받은 기업들 가운데 적잖은 수가 아직도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오히려 부실이 심화돼 금융기관에 부담이 되고 있다.

이같은 점에 비추어 볼 때 2단계 구조조정에서조차 구조적 유동성 문제기업에 출자전환 등의 방법으로 지원을 해주는 것은 '정리할 기업은 과감하게 포기해 금융부실의 원천을 제거하겠다'는 2단계 기업구조조정의 당초 취지와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기홍 금감원 부원장이 "부실기업 판정대상 150∼200개 가운데 살릴 기업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밝힘에 따라 2단계 기업구조조정이 부실기업을 정리하기보다는 살릴 명분을 주려는 절차가 아니냐는 비난도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은행별로 각각의 세부 판정기준을 작성함으로써 비슷한 여건의 기업이라도 어떤 은행을 주채권은행으로 삼고 있느냐에 따라 운명이 엇갈릴 수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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