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폭력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왜 그럴까.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국회의원들이 단골메뉴로 학교폭력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면서 언론에 보도되기 때문이다. 국회는 숨을 쉬지 않는데 국정감사는 준비해야 한다는 국회의원들의 놀라운(?) 책임감이라기보다는 눈길을 끌 만한 자료로 한 건을 올리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씁쓸하다.
하지만 학교폭력이 숙지지 않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대표적인 국정감사 자료. 올해 들어 6월말까지 경찰에 검거된 학교폭력 서클은 14개파 161명. 전국 시·도 교육청으로부터 취합한 '학교폭력피해 설문자료'에 따르면 올들어 7월까지 교내외에서 금품 및 폭행 피해를 봤다는 학생이 무려 9만3천285명.
무엇 때문일까. 대구 달서구에 있는 새천년청소년교실에 물었다. 이곳은 안심종합사회복지관이 대구시, 대구시 교육청 후원으로 학교생활 부적응 학생들에 대한 특별교육을 실시하는 곳이다. 대구에서 유일할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
특별교육은 잘라 말해 퇴학 위기에 놓인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제공받는 기회다. 과거엔 근신, 정학, 퇴학 등으로 처벌이 나눠졌지만 요즘은 교내봉사-사회봉사-특별교육이수-퇴학 등의 단계로 돼 있다.
새천년청소년교실에는 올해만 120명이 거쳐갔고 연말까지 200명을 넘길 예정이다. 격주 간격으로 이뤄지는 교육에 참가하는 학생은 10명 내외. 지난 주에는 중학교 남학생 4명, 여학생 6명이 교육을 받았다. 5일 동안 진행되는 교육에는 음악·미술 치료, 집단·개별 상담, 성교육 등에 노인·장애인 시설 봉사활동도 포함돼 있다.
3일째인 수요일 오후. 가족의 얼굴을 그려보는 미술치료 시간이었다. 보통 좋아하는 사람은 크고 밝게, 싫은 사람은 뒤쪽에 어둡게 그린다는 귀띔을 듣고 학생들의 그림을 보니, 모두 제각각이었다. 시간을 맡고 있는 표은이(대구교육과학연구원 학생상담봉사자)씨는 "돌아가면서 그림과 자기 가족에 대해 설명하는데 대부분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다는 바람이 가장 크다"며 "가정에서의 결손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첫번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서 살펴봄직한 통계.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한해 이혼소송과 협의이혼 사건은 각각 4만1천55건, 12만6천500건으로 98년에 비해 5.3%, 2.4% 증가했다. 하루 평균 459쌍이 이혼하는 꼴. 가정폭력으로 접수되는 사건은 하루 10.6건이었다.
교육에 참가한 중학생 4명 가운데 3명은 올초 한 차례 새천년청소년교실을 다녀간 경험이 있다. 운영을 맡고 있는 김수경(25·여·사회복지사)씨는 "교육을 받은 뒤 2개월 정도 착실하게 학교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자녀로부터 폭행피해를 들은 학부모가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구치소까지 갔다온 아이들"이라고 했다.
5일째인 금요일. 교육을 끝낸 학생들은 소감문 한 장씩을 남겼다. "아무렇게나 살아온 시간이 아쉽다. 장애인들을 보면서, 내 일도 알아서 못해온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잘못이 너무 많았다. 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처음으로 깨달았다" "세상을 좀 더 밝게 보고 남을 돕는 사람이 돼야겠다"
학교폭력은 피해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해학생을 올바로 이끌고 그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 근본처방이다. 김씨는 "스스로 답답해 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을 벗어나지 못하는 저들에게 도움은커녕 돌팔매만 던지는 가정과 사회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내내 팔짱만 끼고 있다가 '학교폭력 심각하다'는 자료나 만드는 국회의원들만 나무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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