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시작돼 오는 2004년 전면 시행되는 제7차 교육과정이 부실하게 운영될 위기에 놓였다. 수준별 학습, 특별·재량활동 강화 등 원칙적인 부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전교조는 전면 반대를 주장하며 철폐투쟁에 나섰다. 현실적으로도 학생지도에 손이 훨씬 많이 가는 7차 교육과정 시행을 위해서는 교사들의 짐을 덜어주는 게 전제돼야 하지만 학급당 인원수 감축, 교원 증원 등은 요원하다. 게다가 새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교실 증·개축은 아직 밑그림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 결국 교육부는 준비 안된 교육과정을 '단계적' 또는 '점진적'이라는 미명 아래 삐걱거리며 출발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정책도 아닌 교육과정이라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제7차 교육과정이란
올해 초등 1, 2학년부터 시작된 새 교육과정. 내년에는 중학교 1학년, 2002년에는 고등학교 1학년부터 도입해 2004년 초·중·고 전체적으로 시행된다. 과거 지식 중심의 획일적 교육에서 실천 중심의 체험과 토론 학습으로 전환하며 학생 개개인의 이해나 성취도에 맞춰 다르게 가르치고 배우는 수준별 교육이 골자다.
학년 개념도 초등 1학년부터 고교 1학년까지를 10학년 단위로 묶어 국민보통교육으로 진행하고 고교 2, 3학년은 학생 개개인의 특기와 적성에 따라 선택과목 중심으로 전환한다.
가장 큰 특징은 수준별 교육이다. 단계형과 심화·보충형으로 나뉜다. 단계형은 수준에 따라 단계를 구분해 한 단계 학습이 끝날 때 이수, 유급을 결정하는 방식. 심화·보충형은 분반을 하거나 분단을 나눠 비슷한 수준의 학습집단끼리 수업한다.
◇찬반의 초점
7차 교육과정 철폐투쟁에 나선 전교조의 주장을 살펴보자. 전교조는 수준별 교육과정 도입에 대해 "우열반 편성을 제도화함으로써 80%의 열등학생들에게 좌절감을 주고 우등반을 위한 사교육을 강화한다"고 비판했다. 특별활동에 대해서도 "교과학습 부담이 늘어 시간적 여유가 없을 뿐 아니라 수익자 부담 원칙으로 해 학부모 부담만 늘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수준별 교육은 우열반 개념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성취수준에 맞춰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제공하려는 제도"라고 반박했다. 오히려 부진아, 열등생에 대한 교육을 더 알차게 할 수 있어 획일적 교육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과밀 학급, 부족한 교원
7차 교육과정 시행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교사들의 원칙적인 반대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장애물이 많다.
우선 학급당 학생수가 많은 것이 문제.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도시의 경우 학급당 35~40명이 일반적이다. 교사들은 이 많은 숫자를 과연 수준에 맞춰 개별화 수업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현재 교원 수로는 턱없이 부족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원 증원 문제가 자연 뒤따른다. 이는 수업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교수·학습방법 개발과 각종 학습자료 개발 등의 전제조건이다. 당장 짜여진 수업을 하기도 벅찬데 연구·개발을 생각이나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교육부는 학교별로 교사들의 수업시수와 학급당 학생수를 감안, 증원한다는 원론적인 방침을 내세우지만 필요 만큼의 증원은 어려워 보인다.
◇시설부족이 더 큰 문제
7차 교육과정 시행에 맞춰 현재 시공중인 대구 상인고(2001년 3월 개교예정)를 살펴보면 기존 학교 시설을 바꾸는데 얼마만한 준비와 노력, 예산이 필요한지 가늠해볼 수 있다.
3개 동으로 구성된 상인고의 경우 1층에 교무센터가 있다. 기존 교무실과 달리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예체능 과목 교사들은 층별로 배치된 교사 연구실에서 근무하므로 나머지 과목 교사들만 있는 곳이다. 교실은 학급이 아니라 과목별 교실군으로 나눠져 있다. 교실군은 수준별 수업을 할 수 있도록 20명, 40명, 60명 등 대·중·소 교실로 구분되며 과목에 따라 중·소 교실이 늘기도 한다.
자기 교실이 없는 학생들은 교재나 준비물, 체육복 등을 넣어두는 락커가 필요하므로 라커룸이 동마다 2개 정도씩 마련된다. 복도는 수준별 이동이 원활하도록 기존 학교보다 넓은 3m 폭이다. 이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기존 학교보다 20~30%의 대지와 교실이 소요된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연차적으로 기존 학교 증·개축에 들어간다는 계획. 그러나 시·도 교육청은 건물구조, 교실배치 등에 따라 각 학교를 유형별로 분류해 증·개축 모델을 만드는 일조차 못 하고 있다. 따라서 2004년 이전에 교실 준비가 가능한 학교는 신설 학교와 진행이 빠른 몇몇 학교에 그칠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교육부는 "7차 교육과정의 기본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실에 맞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학급당 학생수, 교원 증원, 시설 부족 등 총체적인 문제점에 아랑곳없이 우선 밀어붙이고 보겠다는 것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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