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공부 시키기 열풍이 불고 있다. 입시 과열 방지를 위해 교육부가 보충수업 금지, 모의고사 응시횟수 제한, 특기·적성교육 강화 등 끊임없이 대책을 내놓지만 교육현장에는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의 학력 중시 바람은 학부모들은 물론 민선 교육감, 학교장 등 고위 교육관료들이 앞장서고 있다는 점에서 찬·반 논란이 거세다.
▨현황
전통적으로 과열 입시로 유명한 곳은 대구와 서울, 광주가 꼽힌다. 그러나 3개 도시 모두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서울의 경우 학부모들이 주도한다. 교육청과 학교가 뒷짐 지고 있어도 학부모들이 알아서 과외를 시키고, 학원을 보낸다. 공부와 관련해 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요구가 가장 거센 곳도 당연히 서울이다.
광주는 조용한 가운데서도 공부 시키기에 대한 지역민들의 의견일치가 가장 잘 된 곳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구 한 교사는 "예전부터 광주에서는 학교 앞을 지날 때 차량 경적을 울리지 않으며, 트럭 상인도 마이크를 끄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자연히 광주지역 고교생들의 대학 진학률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구는 교육청과 학교가 앞장을 서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특히 김연철 교육감은 주위의 무수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장학사와 학교장, 중등과장, 학무국장, 부교육감에 이어 민선 교육감을 두번이나 하는 동안 학력을 최우선하는 자신의 교육철학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대구 학생들의 학력은 서울에 이어 전국 2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전교조를 비롯한 교사, 학부모 상당수가 "성적 올리기에 눌려 학생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비난을 멈추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전통적인 3개 도시를 후발로 따라붙고 있는 시·도가 적잖다. 전북, 부산, 대전 등으로 계속 번져나가고 있다. 교육당국이 공부 시키기에 태만(?)하다는 일부 학부모들의 강경한 불만을 수용하면서 교육부의 방침에 아랑곳없이 제 길을 가는 식이다.
문용주 전북교육감은 얼마 전 "전국 대부분 대학들이 2002학년도에 수능성적 반영 비율을 높이기로 한 만큼 수능 대비 차원에서 보충수업을 전면 허용하겠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 교육부의 분노(?)를 사 공식적인 후속조치는 없었지만 "교육감의 뜻이 저러하니 학교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번지고 있다는 것.
이달초 치러진 부산시 교육감 보궐선거에서는 학력 최우선 정책을 내세운 설동근 교육위원이 학부모 표를 대거 따내 당선됐다는 후문이다. 그의 당선에 따라 부산시 교육청은 교육부의 정책을 충실히 따르는 데서 탈피, 성적향상을 위한 방향으로 전면 궤도수정될 전망이다. 당선 후 언론 인터뷰에서도 "학력신장을 통한 내실을 다질 때"라고 강조했다.
▨반응
각 시·도의 공부 시키기가 노골화되자 대구지역 상당수 교사와 학부모들은 "위기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구가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3대 도시의 위상을 잃었는데 자칫하다간 교육도시라는 마지막 자존심마저 잃어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교육부의 과열 입시 방지책이 서울만 유리하도록 한다"는 비판이 깔려 있다. 교육부가 공부를 시키려는 교육청과 학교의 손발을 묶어버리면 결국 학부모의 적극성과 자금(?)이 풍부한 서울지역 학생들이 가장 유리해진다는 것이다.과외 허용 이후 상대적으로 불리해졌다는 지방 학부모들의 불만도 마찬가지다. "과외는 허용하고 보충수업을 금지하는 것은 공교육 대신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조치"라며 "도·농간 학력 격차 해소를 위해서라도 보충수업 등 공부 시키기 정책은 풀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구시 교육청은 일단 모의고사 응시, 보충수업 등에 대해 교육부의 정책을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각 학교는 학생 진학에 대한 걱정과 학부모들의 항의 때문에 그대로 따를 수 없다는 분위기. 음성적으로 모의고사를 치르고 특기·적성교육이 보충수업의 변형이라는 학생들의 불만이 인터넷에서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것은 실제 학교들의 움직임이 그러하다는 방증이다.
당연히 전교조를 비롯한 교사, 학부모들 가운데서 쏟아지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전교조 관계자는 "변형 보충수업이 이루어지고 모의고사를 치르는 등 현재의 상황을 방치할 경우 학생들의 입시지옥은 끝낼 방법이 없다"며 "지역간에 경쟁적으로 공부 시키기에 나서는 데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교육계 혼란의 원인에 대해 한 교사가 던진 말에서 꼬여버린 가닥을 풀어내는 해법이 엿보였다. "애당초 교육부의 정책에는 여론수렴 과정이 생략돼 있습니다. 학력 문제도 마찬가지죠. 현장 교사가 어떤 생각을 하고 학생과 학부모는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과연 관심이나 있는지 모르겠어요. 책상머리에서 정책을 만들어내고 지시만 해대는 교육부가 개혁되지 않는 한, 학교와 교사가 학생들에게 거짓을 강요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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