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북한의 대외협상 형태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북한의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은 아주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담에 참석하려고 나섰다가 공항직원의 '몸수색'이 불쾌하다는 이유로 평양으로 되돌아가버린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사건을 의식한, 세계 최강국 미국의 배려에 의해서다.

올들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이고 있는 북한. 자신들이 내놓는 것은 별로 없으면서 상대국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것을 얻어내고 있다. 당연히 할 일을 하고도 다른 학생에게 모범이 될 만한 선행을 한 아이를 제치고 상을 받는 운 좋은 아이에 비교할 만하다. 손해는 별로 보지 않으면서 큰 이득을 챙기는 북한의 대외협상의 특징적인 행태를 알아본다.

△기선제압=북한은 링에 오른 권투선수가 상대선수를 향해 눈을 부릅떠는 것처럼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기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회담 일정도 마음대로 변경하고 장소도 거의 일방적으로 정한다. 평양서 열린 남북정상회담때는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을 뚜렷한 이유없이 하루 연기시켰으며 6·15공동선언 후속조치로 지난 6월과 9월에 열린 1·2차 적십자회담이 금강산에서 열린 것도 북한의 요구에 의해서였다. 또 국방장관회담때는 북한 대표단의 입국경로를 남한과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해 통보했다. 북한은 6·25전쟁때 유엔과 휴전협정을 하면서 자기들 대표단 의자를 유엔측 대표단 의자보다 10cm가량 높게 만들어 놓기도 했었다.

△협상장에서의 결례=외교관례상 있을 수 없는 결례를 범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 94년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에서 열린 핵(核)관련 북미 3단계 고위급 2차회담의 수석대표간 첫날 회의때 당시 북한의 수석대표는 자신이 초청자측임에도 불구하고 회담장 밖에서 상대 대표단을 맞던 관례를 깨고 회담장 안에서 앉아서 기다렸다. 또 지난 6월 1차 적십자회담서도 북측 대표단은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는 '구태'를 되풀이했다.

△시간끌기=북한은 서방 국가와의 협상때 상대국의 지도자가 자신의 임기내에 무엇인가를 이루려한다는 점을 적극 활용한다. 또 협상장에 나온 대표가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할때도 마찬가지다.

지난 9월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때 양측 대표단은 당초 일정을 하루 더 연장해가면서 합의서 채택을 시도했다. 그러나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바람에 거의 결렬됐다가 막판에 북측의 안을 남측이 사실상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합의가 이뤄졌다.

△기존 합의내용 무시=자국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기존에 합의한 내용도 일방적으로 파기한다.

지난 6월말 1차 적십자 회담에서 남북은 비전향장기수 북송후 바로 2차 적십자회담을 열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이 9월2일 비전향장기수들을 보내기로 하고 송환 사흘뒤인 5일 2차회담을 갖자고 요청했지만 반응을 보이지 않다 추석(9월12일) 연휴때 김용순 노동당 비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사자격으로 남한으로 보내면서 회담일정을 통보했다.

△합의 대가 요구=북한이 협상테이블에 앉으면 무엇이든 대가를 요구한다는 것은 국제 외교가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것을 이유로 협상자체를 결렬시키기도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의혹시설 사찰요구를 이유를 핵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1993년 3월)한 북한은 미국과 협상을 하면서 핵동결 대가로 발전용량 1천MW 경수로 2기 건설 지원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2차 남북적십자회담때는 이산가족 생사확인에 필요하다며 컴퓨터 2천대 지원도 남한측에 요구했었다.

흔히 '벼랑끝 외교'로 불리는 북한 외교. 최근들어 그 행태에서 다소의 변화가 있지만 전술적인 변화일 뿐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허만호 교수는 "북한이 빈사상태에 빠진 경제회복 등 체제안정을 위해 예전보다 '공격적인' 외교협상 형태는 덜 보이고 있으나 큰 맥락에서 변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회선기자 thes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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