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부시가 뜨는 이유

사상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의 어마어마한 행차를 바라보면서 젊은시절에 유방(劉邦)은 "와 대단하구나 대장부로 태어나서 나도 한번 저렇게 돼봐야지"라고 감탄했다. 반면 항우(項羽)는 "저놈을 죽이고 내가 저 자리를 차지해야지"하고 별렀다고 사기는 전한다. 그이래 후세 사가들은 명문가 출신의 항우가 미천한 유방에게 밀려난 이유를 이 한마디로 말로써 흔히 설명하곤 한다. ▲"…나도 저렇게 돼야지" 되뇌며 천하를 상대로 분발할것을 다짐하는 유방의 마음 그릇이 "저놈을 죽이고…"하며 적개심을 불태운 항우 보다는 몇 수 위라는 것이다. 실상 항우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다. 명문 출신에다 지략이 출중한 명장이었다. 이에비해 유방은 부모가 이름조차 갖지못한 상민 출신으로 도무지 항우의 상대가 될 수 없는 터수였다. ▲그럼에도 나중에 유방이 중원 천하의 주인이 된것은 모든것에서 항우에 밀리면서도 천하의 민심을 담을 수 있는 포용력만은 항우를 앞섰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영악하고 똑똑해서 자기관리에만 능한 지도자보다 국민 대중을 싸안아 주며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는 이런 지도자는 고금 동서를 통해 항상 국민의 사랑을 받는게 아닐는지…. ▲요즘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후보 부시와 민주당의 고어간 대결이 관심을 끈다. 1차 TV토론후 부시가 고어를 압도하는 것이 우선 흥미롭다. 고어는 매끄러운 말솜씨로 부시를 맘껏 밀어 붙였고 부시는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막상 토론회가 끝난후 뚜껑을 열어보니 부시의 인기가 오히려 급등한것이 신기하다. ▲각종 언론매체들은 토론 자체에서는 고어가 부시를 압도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고어가 밀리는 것은 부시가 말을 더듬거나 수치를 잘못 인용할때 크게 한숨을 쉬어 한심한 표정을 짓거나 눈 알을 굴려 딴곳을 응시하는 등 '우등생이 열등생을 바라보는' 그런 모습을 보인 때문이라 지적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미국민들 역시 영악스런 수재보다 수더분하고 민중과 함께 같이 울고 같이 웃는 인간적 지도자에 매력을 느낀다는 얘기도 될 것 같다. 대통령 지망생들은 모름지기 덕을 쌓은 다음 언감생심 그 자리를 넘봐야 할 것 만 같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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