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의 13일 고려대 특강이 '환란책임' 등을 거론하며 교내 진입을 저지하는 학생들 때문에 무산되는 촌극을 빚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교문은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만큼 내일이고 모레고 기다리겠다"며 정문 옆 도로에 승용차를 세운 채 자리를 뜨지 않고 특강 강행 의지를 다지는 등 '오기'를 부렸다.
김 전 대통령은 특강 예정 30분전인 오전 11시께 승용차 편으로 부인 손명순(孫命順) 여사와 함께 고려대 앞에 도착했으나 이미 이 학교 학생 2백여명이 "환란책임자이자 실패한 대통령의 학교진입을 용인할 수 없다"며 정문을 완전 봉쇄한 뒤였다.
학생들은 '김영삼은 물러가라', '김영삼의 대통령학 = 한보부도 + IMF 구제금융'등의 구호가 담긴 피켓을 들고 흰색 마스크를 한 채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특강을 마련한 행정학과 함성득(咸成得) 교수는 오전 일찍 정문 앞에 나와서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에게 "실패한 사례도 귀중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일단 강의를 들어 보고 이의를 제기하라"며 설득에 나섰지만 학생들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설득에 실패한 함 교수는 승용차안에서 기다리던 김 전 대통령에게 이같은 상황을 보고하고 '이해'를 구했으나 YS는 "교문은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만큼 이를 막는 것은 안되는 일"이라면서 "내일이고 모레고 기다리겠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는 또 김정배(金貞培) 총장이 승용차로 찾아와 "죄송하다. 학생들이 물리적으로 막고 있어서 강연이 불 가능하다"고 완곡하게 '철수'를 요청한데 대해서도 "하버드대, 하얼빈대 등 외국 대학 특강에서는 열렬한 환영을 받 았다"며 "나는 오늘 반드시 학교에 들어가서 강의를 할 것"이라고 완강한 입장을 고수했다.
YS는 "내가 이러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23일간 단식한 사람인데 점심 한끼 굶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며 점심식사도 거부했다.
김 전 대통령의 대변인격인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 의원은 "학교측에서 어젯밤 늦게까지 학생들을 설득해 오늘 강의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했었다"며 "학교측이 너무 무성의한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오후 들어 이 학교 재단인 고려중앙학원 김병관(金炳琯) 이사장도 학생들을 만나 "학교를 찾아온 손님이니 재단 사무실로 모시자"며 수습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김 전 대통령은 오후 2시께 부인 손 여사를 먼저 상도동 자택으로 돌려보낸 뒤 승용차 안에 머무르며 '시위'를 계속했다. 물론 학생들도 "절대 들여보낼 수 없다"며 정문을 떠나지 않았다.
이날 YS의 고려대행에는 이원종(李源宗) 전 정무수석과 오경의(吳景義) 전 마사회장, 신상우(辛相佑) 전 국회부의장, 김용태(金瑢泰) 전 비서실장 등이 수행했다.
한편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YS의 소식을 접하고는 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을 통해 성명을 내도록 했다. 성명은 "다중의 힘으로 전직 대통령에게 모욕을 준 것은 지성인답지 못한 행동"이라며 "학교측도 이 불미스런 사건에 대해 마땅히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 총재는 또 오후 8시30분께 주진우(朱鎭旴) 비서실장을 YS에게 보내 "날씨도 추운데 건강에 유념하시라"며 걱정과 위로의 말을 전했다고 당 관계자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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