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꽃은 바로 노벨 평화상. 6개부문의 노벨상 가운데 정치인 언론 등 세간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고 있는 상이다. 노벨 평화상은 1901년 국제적십자사와 프랑스 자유소사이어티를 창설한 장 앙리뒤낭과 프레디릭 파시가 첫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후 1, 2차 대전으로 수상 자체가 중단됐으며 16차례 수상자를 내지 못하는 굴절을 겪었다. 국제적십자사는 17년, 44년, 63년 세차례 평화상을 수상해 최다 수상기록을 세웠고 유엔고등난민판무관실은 54년, 81년 두차례 평화상을 수상했다.김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은 아시아에서 7번째. 이처럼 아시아권 수상자가 극소수인 탓에 노벨상의 국제성과 보편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있다. 아시아권에서의 수상자는 노벨상을 거부한것으로 유명한 북베트남의 레 둑 토(1973년) 를 비롯, 일본의 사토 에이사쿠총리( 1974년) 인도의 테레사수녀(1979) 티베트의 달라이라마(1989)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여사(1991) 동티모르의 평화를 가져온 공로로 1996년 공동 수상한 벨로주교와 호세 라모스 오르타가 전부다.
역대 노벨상 주요수상자로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대통령(1906), 아프리카의 빈민활동으로 수상한 알베르트 슈바이처( 1952),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킹 (1964) 동서독 화해분위기를 조성한 서독총리 빌리 브란트(1971), 자유노조지도자인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1983),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1990), 데즈먼드 투투 남아공화국주교(1984) 넬슨만델라(1993), 야세르 아라파트(1994), 동티모르의 독립에 기여한 카를로스 벨로주교(1996)등이 있다. 역대 수상자중 현재까지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있는 인물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1993년 평화상을 수상한 그는 지난해 퇴임을 계기로 아프리카 지역분쟁 해결사로 활약하고있다. 1988년 미얀마 민주화운동이후로 12년째 체포와 가택연금 생활을 하고있는 아웅산 수지여사는 군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비폭력 투쟁으로 미얀마 민주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않고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도 활발히 활동하고있는 역대 수상자중의 한사람. 1989년 수상자인 달라이 라마는 다음달 한국과 대만을 잇따라 방문할 계획이다.
소련의 개방개혁을 추진해 1990년 평화상을 수상한 미하일 고르바초크 전 소련대통령은 고르바초프재단을 세워 국제적인 활동을 하고있고, 1996년 동티모르의 독립에 기여한 공로로 수상한 벨로 주교는 현재 세계를 돌려 인도네시아군의 잔혹 행위를 고발하고있다. 1997년 수상자인 조디 윌리암스 국제지뢰금지운동 대표는 한국과 베트남등을 방문, 지뢰의 위험성과 대인지뢰금지 협약의 비준을 촉구하고있다. 노벨 평화상에도 옥에 티는 있다. 73년 당시 미 국무장관서리인 헨리 키신저와 공동 수상한 북베트남의 레 둑토는 누구나 받고 싶어하는 노벨평화상 수상을 거부했다. 당시 레 둑 토는 진정한 평화를 이룩되지 않았다며 노벨평화상을 거부한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또 헨리 키신저는 평화협상의 주역이라기 보다는 베트남전의 주역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또 지난 74년 수상자였던 사토 당시 일본 총리는 경제 대국의 명예를 지키려는 일본재계의 로비 덕에 수상했다는 뒷얘기를 남겼다. 중동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78년 상을 받은 베긴 이스라엘 당시 수상은 상을 받자마자 중동평화의 훼방꾼으로 돌변해 많은 비판이 일었다. 94년에는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총리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가 노벨평화상후보로 지명되자 노벨평화상위원회 위원중 한명이 노벨평화상 선정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사퇴 하기도했다.
91년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뒤 곧바로 리투아니아를 침공해 선정위원들이 밤잠을 설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있다.
전쟁과 학살이 끊이지 않는 지구에서 평화의 사도를 찾는 일은 그 만큼 어렵다. 그래서 수상은 더욱 값진 의미를 가지고 있는것이다.
조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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