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노르웨이 노벨 평화위원회가 우리나라의 김대중 대통령을 올해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것을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한 주가 다 지났지만 아직도 그 열기는 각 기업체가 여러 신문에 싣는 전면광고로 남아있다. 수많은 수난을 겪으면서도 잃지 않은 민주화와 인권에 대한 집념,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통해 한반도 냉전 종식의 계기를 마련한 '햇볕정책'이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다.
하여튼 노벨상은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처음 받는 훌륭한 상이고 보면 민족의 경사라 할 만하다. 그래서 '노벨상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느니, '노벨상도 별 것 아니네'라든가 '북한에 그렇게 돈을 퍼주고 받은 상인데 북한이 없었으면 어쨌을까' 등등의 낮추거나 비꼬는 말은 이제 그만두자. 세간에서 마구 쏟아대는 상(賞)과는 질적으로 다른 노벨 평화상 수상을 우리 모두 치하하고 환영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박수를 칠 때는 '그런데' '하지만'과 같은 꼬리표를 달 필요가 없다. 사실 우리의 박수는 꼭 김 대통령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김 대통령을 만들어 낸 우리들 스스로가 걸어왔던 고난.역경의 비극적인 역사를 향한 큰 희망적 성찰의 표현이고, 더욱이 이 다음의 예비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한 보이지 않는 심정적 격려의 기금 조성인 셈이다.
노벨상 수상 이후 국내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 소기의 목적이 달성됐으니 '할일 다 했다고 아무 일도 않겠지'가 아니면 '이제부터 다른 신경 안쓰니 나라가 좀 나아지겠지'라는 식의 상반된 세간의 말투가 그렇다. 정서에 따라서도 '후끈' 아니면 '썰렁'일색이었따. 서울 모 대학의 학생 운동권의 경우 '민족민주(NL)' 계열을 긍정적 평가를, '민중민주(PD)' 계열은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국내 여론은 대체로 '평화와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않은 한반도 지역의 상징적 인물인 김 대통령에게 평화상을 주어 그것을 더욱 격려.조장하고자 했다. 그것은 바로 불행했던 우리 역사의 상징이다. 그만큼 개인적인 지난 업적 칭송에만 머물 수 없고 암울한 지경의(그래서 평화가 아닌) 우리 경제와 민생을 챙기는 내치(內治)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을 넘어서서 '존경받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으라는 말이었다.
정말이지 노벨상의 뒤에는 그 대표성에 가려진 많은 고통받던 국민의 시대와 역사가 있었다. 이를 알기에 김 대통령도 '이 영광을 국민들에게 돌리고 싶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니 공원 조성이니 뭐니 하며 노벨상 수상을 개인적 차원의 것으로 상징화.신격화하는 작업은 고려돼야 한다. 이번 상은 단체수상이라는 대승적 차원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이나 노벨상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분들도 국민들이 열심히 박수를 칠 때 그 우쭐대며 머물고 싶은 영광의 단상을 겸허하게 떠나야 한다. '공을 이루었으면 몸을 뒤로 물리는 것(功遂身退)'이 하늘의 도리(天之道)이다. 진정으로 국민들에게 돌릴 영광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특히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상이었다면 발 밑과 주위를 냉정히 둘러보아야 한다. 북한의 언론 매체가 수상 소식에 대해 일체의 논평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 그리고 북한이 최근 우리측과 합의한 여러 사항을 연기하거나 위반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숙고해 볼 일이다.
청정한 마음일때 존경받는 대통령의 길도 있다. 지역과 계층, 세대를 넘어서서 '먹고사는' 문제에 불안해하지 않는 민초들의 마음 속 깊은 '믿음(信)'에서 우러나온 상찬(賞讚)이야말로 무형의 노벨상이다. 믿음이 없으면 정치는 끝이다. 내치의 표준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인 '밥'과 그 밥을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안전 조건'들의 보장 여부이다. 그리고 이런 내치가 곧 외치(外治)로서 확대.연결되어 '햇볕정책'이 성실히 완성돼 가야한다. 영광의 단상을 박수칠 때 내려서라는 뜻도 여기에 있다. 노벨 '평화상' 속에는 '평화'가 없다.
영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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