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리뷰-수학의 교육적 가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수학은 양(量)에 지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후 중세에서도 내내 자연과학의 영역과는 분리된 영역에 속해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피타고라스 학파에겐 여전히 질(質)에 속해 있던 수치적인 양은(수는 그들에게 신비적 효력을 부여받은 존재였다), 세월을 거듭함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성격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수치적인 양은 그 역시 한 문명사회의 일원인 개인에게 끊임없이 역할을 증대하고 있다. 일례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수학 수준 때문에 대학입학시험에 실패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된다. 이것은 수학의 역할 중 한 단면에 불과한 것이다. 수학의 교육적 가치는 무엇인가?
'수학에는 불명료한 개념을 표현하는 기호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푸리에는 말했다. 사실 모든 학문 중에서 수학은 가장 엄밀한 학문이다. 수학 이외의 경우에서 우리는 종종 어림짐작의 사유, 막연한 직관에 의존해도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을 처음 접했을 때 문외한들은 예외없이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처음 기하학 시험을 치를 때 항상 난처해지곤 하는데, 그 이유는 아무리 보아도 자명하기만한 정리(定理)를 세우기 위하여 증명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 곤혹스럽고 의아하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정신이 극히 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 쇼펜하우어는 아주 우스꽝스럽게도 수학자를 목발로 걷기 위하여 자기 다리를 자르는 사람에 비유했다. 왜 이성의 자발적인 약동을 목발이라 표현했을까? 그것은 수학자가 돌다리도 두드려가며 극도로 엄밀하게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가서 증명하지 않았다는 의혹의 여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수학적 정리는 통상 그것이 이미 공인된 정리에서 연역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이미 공인된 정리의 논리적이고 필연적인 결과라고 여겨질 때 증명된 것이라고 불린다. 따라서 수학은 어떤 분야보다도, 데카르트가 말하는 것만큼 간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훈련된 전문가의 엄밀함에 대한 요구 정도에는 부응하는 연쇄적 이성들의 집합체로 보이는 것이다.
수학은 우리에게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가르쳐준다. 과학은 자연 현상들간에 존재하는 관계 양상들을 극도로 정확한 언어로 번역하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이제'수(數)가 세계를 지배'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보다 효과적으로 그리고 보다 겸손하게 수가 세계를 번역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세계는 수에 의해 굴절되는 것이 아니라 수에 의해 유연하면서도 엄밀한 언어로 번역되는 것이다. '수는 세계의 지배자가 아니라 세상의 충실한 통역자이다' 수학은 하나의 개별 과학이라기보다 모든 과학의 도구이자 언어이며, 이성의 에스페란토어로서 물리학자.화학자. 생물학자 등이 공동으로 사용하며, 오늘날에는 초보적인 단계이긴 하지만 김리학자.사회학자.경제학가 등도 사용하기 시작한 하나의 보편적인 언어이다. 수학적 언어는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일례로 연속 변분의 표현을 가능케 해준 17세기 미적분의 발견을 들 수 있다). 혹자는 '수학이란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이 탄생한 것은 바로 수학의 공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로 현대 물리학은 17세기 케플러, 갈릴레이, 뉴턴 등이 우주의 합리적인 구성에 수학을 이용할 생각을 가졌을 때 탄생했던 것이다. 수학적 건조물은 약속의 체계의 결과인 정리의 체계이다. 수학자는 그 자신이 세운 원칙들에만 관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세계와는 명백한 관련이 없는, 순수 정신의 산물인 수학자의 세계는 어떤 관점을 택하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가장 지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무의미하고 가장 무용한 세계이다. 물론 수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반드시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수학자의 논리는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수학은 추론의 정신을 형성시켜준다. 수학이 형성시켜주는 정신은 한 개인을 해결해야 할 문제 앞에서 보다 더 훌륭하게 추론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수학이 필요하냐 불필요하냐에 대해 어떤 판단이 내려질지라도 오늘날 고등교육에서 수학이 하나의 필수과목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일상생활에서 수학을 사용하는 직업은 극히 드물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이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긴 하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세계가 이해될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닐는지.
수학적인 활동이란 하나의 논리정연한 게임(사람들이 흔히 트럼프 게임, 혹은 체스 게임이라고 말할 때와 같은 의미에서의 게임) 이상의 것으로서 지적인 구조들을 밝혀내는 것인데, 그 지적인 구조들은 정신이 무동기적으로 발명한 것이 아니라 우주의 조직을 주재해 왔던 그런 것이다. 데카르트는 광학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고대의 삼각법을 이용했고, 갈릴레이는 물체의 낙하를 설명하기 위해서 대수학을 이용했으며, 케플러는 타원의 기하학이 행성의 운행에 대한 연구를 위해 미리 마련돼 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아가 겉으로는 현실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리만의 기하학마저도 유용한 것이다.
---60차문제 총평
60차 매일 논술은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 나라 사람들의 행동 양식의 문제점을 담은 제시문을 보이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라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는 제시문에서 지적한 문제점을 정확히 확인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확장하는 논술력을 평가하려는 데 초점을 맞춘 형식이다. 따라서 논술자는 제시문에서 지적한 '정(情)과 원칙(原則)'을 혼동하는 행동양식의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논술문을 통하여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에 적합한 예들을 생활 주변에서 찾아 제시하는 것이 설득력 확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그 다음은 이를 논술문의 성격에 맞게 논리적으로 글을 구성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글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하겠다. 이 점만 유의하면 이번 문제는 크게 어렵지 않은 논제라고 생각된다.
60차 문제 응모작 중에서는 혜화여고 3학년 이하림 양의 글을 최우수작으로 뽑았다. 이하림 양은 글을 써내려가는 문장 표현 능력이 우수하다. 적절한 인용으로부터 화제를 도입하여 일단 시작이 성공적이다. 또, 화제를 논제와 연결시켜나가는 과정도 자연스럽게 잘 되었다. 자연스러운 연결은 일관성 즉, 논리적 전개가 지켜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잘 된 것이다. 논제의 확인도 선명하게 잘 되었다. 논술에서 서론을 잘 쓰는 것은 절반의 성공을 보장한다고 할 수 있다. 본론 앞 단락에서 제시문 내용에서 지적하는 문제의 핵심을 드러낼 수 있는 구절을 끌어온 점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요소가 되었다. 이를 우리의 일상적 사례와 연결시킨 점도 독자의 이해를 돕는 글쓰기 방식으로 잘 되었다. 논술문은 쉽게, 그리고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피력할 때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본론 두 번째 단락의 내용과 첫 번째 단락의 내용이 상당히 중복적인 점은 아쉽다. 첫 번째 단락에서 지적한 문제에 대한 반성과 해결 방안이 좀더 구체적으로 다루어졌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결론에서 자신의 주장을 충분히 제시하고 있지만, 그 앞의 내용이 결론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도출시킬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면 훨씬 좋은 논술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결론은 논제에 적절한 주제문이 명확히 제시되어 잘 마무리 되었다.
---60차문제 최우수작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다"이다. 이 말은 도덕성이 훌륭하여 법에 의한 강제가 그의 행위에 작용할 필요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보통 이해된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생활에서는 정(情)으로 맺어지는 관계 이외에도 이익과 관련되는 관계가 수없이 많이 생겨난다. 따라서 이러한 이익 관계를 세련되게 처리할 수 있는 원칙(原則)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 끼리만이 아닌 세계인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는 '정(情)과 원칙(原則)'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그에 입각한 생활 태도가 꼭 필요하다.
제시문에서 필자는 "한국에는 친절은 있으나, 서비스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서비스'는 계약 이행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제시문의 필자는 자신의 아파트 수리 경험을 통하여 우리 나라 사람들의 '서비스'에 대한 생각을 '자신이 내켜서 베푸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자신이 내키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계약된 일을 계약 조건에 따라, 즉 원칙(原則)에 입각해서 처리해야 하는 일조차도 정(情)에 따라 처리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이는 당장은 마음 편하고, 훈훈한 인정을 느낄 수 있어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상대와의 이익이 상충하게 되는 경우 그 부작용은 걷잡을 수 없이 불거져 나오게 된다. 제시문의 인테리어 업자처럼 계약에 의해 성립된 관계에 정(情)을 개입시켜 행동하게 되는 경우는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 끼리도 서로 간에 오해와 불신을 초래하고, 나아가서는 배신감까지 느끼게 할 수 있다. 흔히 듣는 "쟤가 나한테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이 이런 경우에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런 경우를 보건대, 우리의 원칙과 정의 이해와 적용에는 문제가 있음에 틀림없다.
법은 인간이 사회 생활을 한 이래로 서로 간의 관계에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때 무엇이 정의(正義)인가를 규정하여 문제 해결을 위한 판단의 기준으로 삼기 위해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서로 간에 다툼이 생길 경우 법이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이익관계로 맺어지는 관계에는 항상 다툼이 발생할 소지가 있으며, 이럴 경우일수록 법과 원칙에 입각한 일의 처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럴 경우 제시문의 인테리어 업자처럼 정에 입각하여 일을 처리하면 오해가 발생하게 된다. 문제는 당사자 간에 오해가 생기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회는 준법의식이 낮아질 수 있다. 준법의식이 낮은 사회는 불신풍조가 만연하게 된다. 예를 들어 상품이나 서비스에 정가가 없이 당사자의 내키는 기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면 누가 정가를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이 그렇다. 흔히 볼 수 있는 '창고 정리 대 바겐세일!' 광고 같은 경우가 그렇다. 법의 집행에 정이 개입하게 되니까 '거미줄 법'이라는 말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정(情)은 따뜻하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법(法)과 원칙은 정의를 수호한다. 모두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법과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때 정이 적용되는 경우는 양자 모두의 부작용만을 초래할 뿐이다. 단순한 인간관계가 아닌 다양한 계약관계로 맺어지는 경우가 많은 개방된 현대 사회의 생활에서는 정과 원칙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적용되어야 인정이 넘치고 정의가 지켜지는 사회가 될 수 있다.-이하림(혜화여고 3학년)
---62차문제
문제: 아래 제시문은 '논어'에 서술된 군자의 미덕에 대한 글이다. 아래의 제시문에 나타나는 군자의 미덕에 대하여 '유학의 현대적 의의'라는 제목으로 논술하라.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느냐?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느냐?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아니하면, 그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유자(有子)가 말하기를 "그 사람됨이 효도하고 공손하면서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는 자가 적으니,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난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가 있지 않을 것이다. 군자는 근본에 힘쓸 것이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길 것이다. 효도와 공손은 그 어진 것의 근본인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을 교묘하게 하며 얼굴빛을 좋게 하는 자는 어진 사람이 드물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승(千乘)의 나라를 다스리려면 일을 공경하고, 믿음으로 하며, 쓰기를 절제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백성 부리기를 때에 맞추어 할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가 몸가짐을 무겁게 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을 것이요, 허물이 있거든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말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의 잘못이 없다면 삼 년을 아버지의 도를 고치지 말아야 효도라고 이를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먹는 데 배부르기를 구하지 아니하고, 거처하는 데 편안한 것을 구하지 아니하며, 일에 민첩하고 말을 삼가며, 도가 있는 곳에 나아가 자기의 잘못을 바르게 하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할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賜, 곧 자공)는 비로소 더불어 '시(詩)'를 말하겠구나, 지나간 일을 말하면 오는 일을 아는구나."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치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할 것이다."
▨응모요령
글의 길이는 빈칸을 포함하여 1,500자 안팎(±150)이 되게 할 것.
제목을 쓰지 말고 본문부터 시작할 것.
원고마감 일자 : 10월 28일(토요일)
우편으로 응모할 경우 봉투 겉면에'제62차 학생 논술 응모'라고 반드시 쓸 것.
주소 :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 2가 71 매일신문 논술 담당자 앞 (우) 700 - 715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 166 일신학원 논술 담당자 앞 (우) 700 - 412
학교와 학년, 집 전화번호를 밝힐 것.
당선작은 본지에 강평과 함께 게재. (상장과 부상은 학교로 우송함)
※ 인터넷으로도 원고를 접수합니다.
매일신문- kjk@imaeil.com
일신학원- ilsin@ils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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