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창가에서-노벨 평화상과 경제학상(윤주태.출판부장)

올해는 남달랐다. 노벨상이라는 세계축제에 한국인이 첫 '초대장' 을 받은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노벨상이라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와는 인연이 없는, 아니 우리로서는 언감생심 넘보기 힘든 잔치상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올해는 남의 집 잔치가 아니었다. 우리의 김대중 대통령이 정식 초대되고, 그것도 평화상이라는 주빈자리를 차지했으니 한민족의 자랑스러움에 모처럼 어깨가 으쓱해진다.

'평화'라는 말은 사람을 뇌쇄시키는 호소력이 있다. 정의, 사랑, 청렴, 인내, 고결 같은 아름다운 단어들을 아무리 동원해봐도 '평화' 라는 한마디 단어를 능가하지 못한다. 평화라는 말만큼 넉넉한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대통령이 받은 노벨 평화상은 개인 최고의 영광인 동시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성숙했음을 세계가 인증해 준 보증수표인 셈이다.

노벨 평화상 수상, 민주주의 인정받아

그런데 노벨상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평화상과는 아주 이질적인 경제학상이라는 것이 있다. 우선 '경제'라는 용어는 '평화'라는 말에 비해 다소 왜소해 보인다. 또 이익이니 비용이니 효율성을 따지는 학문인 만큼 인간적인 매력이나 설득력도 없어 보인다. 자칫 도가 넘치면 돈만 밝히는 '수전노'쯤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경제학상은 갈수록 그 권위가 높아지고 있다. 왜 그런가.

올해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시카고 대학의 제임스 헤크먼과 버컬리 대학의 다니엘 맥패든 교수였다. 이들이 분석한 내용을 보면 따분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왜 사람들은 폴크스바겐, 도요타 대신 포드 자동차를 구매하고 자녀와 떨어져 혼자 지내는 부모들의 적정수입은 얼마로 책정돼야 하며 대학졸업장의 가치는 얼마인가 하는 식이다.

심지어 우리가 자리를 옮길 경우 교통편은 버스.지하철.택시 등인데 내가 갖고있는 시간.돈.나이 등에 따라 각각의 상황에서 효용 극대화를 위해 어떤 교통편을 이용하는지를 분석했다는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포괄적이고 결과에 집착하는 우리로서는 이러한 미시경제학적인 분석에 염증을 느낄 것이다.

이런 시시콜콜한 일상사를 분석한 이들에게 노벨 경제학상이 주어졌다는 것은 얼핏 이해하기 어렵지만 경제는 그만큼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시켜 주었다. 국내 경제가 갈팡질팡하는 것도 이런 냉엄한 경제철학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는 평화를 보는 눈과는 달라야 한다. 경제는 추상같아야 한다. 예외가 없어야 한다. 진정한 평화는 경제번영이라는 혹독한 시험을 거친 후에야 찾아오는 아늑한 상태, 바로 그것이어야 한다.

경제번영에 눈 돌려야

은나라 주왕이 신하와 더불어 주지육림 속에서 놀다 문득 날짜를 물으니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친척인 기자(箕子)에게 사람을 보내 날짜를 묻게하니 기자가 말하기를 "온 나라가 다 모르는데 나 홀로 안다고 하면 몸이 위태로울 뿐이다. 술에 취해 모른다고 하여라"고 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고사다. 기자의 행동은 처세술과 인간적인 면에서는 다소 점수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경제학의 눈으로 보면 빵점짜리 신하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들먹일 것도 없이 정의감도 없고 위기의식도 없다. 마치 현재 이 나라의 기득권층을 보는 것 같다. 경제없이 진정한 평화 없다

이제 우리는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민주주의는 인정받았다. 이제 남은 것은 경제다. 민주주의는 쟁취할 수도 있지만 경제는 그렇지 못하다. 철저한 자기반성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만약 노벨 평화상을 받은 현직 대통령이 정작 그 나라의 경제를 책임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자기모순이며 국제적인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자본주의 정신이 제대로 몸에 배지 않은 사회는 최고 책임자가 직접 챙기지 않으면 온갖 곳에서 누수가 생긴다. 공기업이 줄줄 새고 각종 연금 기금에 구멍이 생기고 심지어는 사기업까지 모럴 해저드에 빠진다. 바로 총체적인 부패로 연결되고 만다.

누구보다 민생도탄의 원인을 꿰뚫고 있을 김 대통령께, 무리한 부탁이오나 내친 김에 내년에는 노벨 경제학상을 한번 노려봄이 어떠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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