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의 피 100㏄ 중 성장호르몬의 함량은 5ng이하이다. 1ng(나노그램)은 10억분의 1g. 성장호르몬의 양이 얼마나 적은지 짐작이 간다. 체내에 극미량만 존재하는 이 호르몬을 어떻게 대량 생산,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게 됐을까?
1960년대 유럽과 미국에선 성장호르몬을 처음으로 왜소증에 사용했다. 이때는 말(馬)의 뇌하수체에서 추출해 썼다. 그 당시에는 말의 뇌하수체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채취하는 양도 적어, 대강 말 20마리의 뇌하수체를 모아야 한 사람에게 투여할 수 있었다.
또 그걸 투여해도 사람의 혈청에 즉시 다른 종(種)의 단백질로 바뀌어 작용, 중화항체(neutralizing antibody)가 생김으로써 효과도 없었다.
1970년대에는 말이 아닌 사람의 성장호르몬을 사용했다. 교통사고 등으로 숨진 사람들을 부검할 때 뇌하수체를 대량으로 얻었던 것. 하지만 죽은 사람에게서 모은 성장호르몬은 무서운 병을 유발했다. 1990년대 초 유럽에서 크게 문제됐던 크로이츠웰트-야콥이란 병이 그것.
광우병과 비슷한 이 병은 뇌에 스펀지 모양으로 구멍이 숭숭 뚫리는 형태의 뇌질환이다. 성장호르몬을 추출할 때 이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오염돼 있었던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성장호르몬을 투여받고 10년 이상 지나서 이 병에 걸린 사람이 2천명 이상이나 됐다.
이런 문제는 유전공학이 발전하고서야 해결됐다. 먼저 수십만개의 사람 유전자 중에서 한개의 성장호르몬 유전자를 골라냈다. 이것을 플라스미드에 끼워 넣은 뒤 다시 대장균 안에 집어 넣었다. 플라스미드는 대장균의 원형질내에 같이 살고 있는 것.
이렇게 조작한 대장균을 부풀리면 덩달아 성장호르몬이 든 DNA도 증폭됐다. 영양분만 있으면 잘 자라고 20분에 한번씩 분열하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또 인체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나, 종이 달라서 오는 항체 발생 문제도 동시에 해결됐다. 재조합 기법으로 제조한 새로운 성장호르몬은 1979년에야 세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종균기자 healthc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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