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왜 이 나라를 떠나나

화성 '씨랜드'화재참사로 아들을 잃은 필드하키 여자국가대표선수 출신의 김순덕씨가 지난해 11월 뉴질랜드 이민을 떠난 사건은 우리사회에 큰 충격이었다. 더욱이 이 소식을 듣고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직접 만나 만류했으나 그녀는 끝내 거절했다. "나는 국가대표선수로 나름대로 조국의 명예를 위해 헌신했지만 그 조국은 내 아들 하나도 지켜주지 못했다"면서 그동안 받은 훈장을 반납하고 홀연히 떠나 버렸다. 그녀는 말이 이민이지 사실 조국을 버린 것이나 다름 없다. 지금까지의 이민은 단순히 돈을 벌기위한 '생계형'이 주종을 이뤘다. 아직 그 추세는 계속되고 있지만 IMF충격을 겪고난 이후 최근 두드러진건 '화이트칼라' 이민이다. 연봉 8천만원을 받는 30대후반의 외국계기업체 부장은 탄탄한 직장을 미련없이 버리고 캐나다 이민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가 현지에서 얻은 직종은 쇼핑몰의 잡화점이라고 한다. "살아남으려고 바둥거리는 내 삶의 모양을 두고 고민했지요, 복잡한 사회의 돈 많은 엘리트보다 조용한 사회의 한가로운 소시민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이민 동기이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선 "아직 배가 덜 고픈 모양"이라고 비아양거릴 만도 하지만 '삶의 질'을 그는 택한 것이다. 대기업 전무였던 60대는 호주의 투자이민을 선택한 이유로 "노인복지도 없고 걸핏하면 대형사고에다 정치는 짜증이나고… 도대체 살맛이 안난다"고 했다. 어느 이민알선 여행사 직원은 "앞으로 얼마 안가면 외국영주권은 운전면허증처럼 필수품이 될 것"이라는 다소 성급하고 극단적인 예측까지 내놓고 있다. 더욱 놀라운 건 의사.세무사.건축사 등 30, 40대의 전문직의 이민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캐나다쪽을 선호하고 있는데 현지에선 한국의 자격증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피자배달'등 단순노동에 불과한 잡역부를 할 각오로 떠나간다는 것이다. 이 전문직 이민현상은 두뇌유출에다 국부(國富)까지 이탈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들을 양성하려면 공.사교육비만 해도 엄청난 것인데 그 '노하우'가 고스란히 빠져나간다는 건 여간 안타까운 노릇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의 이민동기가 예사롭지 않다는데 있다. "거기에 가서 정직하게만 살면 그 반사이익은 투명하게 반드시 되돌아오지만 솔직하게 우리사회는 장래가 불투명하고 현재의 사회.정치현실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아닙니까" 어쩌다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됐는지 실로 참담하다.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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