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사와 정부는 27일 오후 제2차 이산가족방문단의 북측 후보자 200명 명단을 언론에 공개했다.
2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은 북한 조선적십자회의 일정 수정 제의를 이날 한적이 수용함으로써 오는 11월 30일부터 12월 2일까지 이뤄진다.
지난 1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과 마찬가지로 이날 전달된 북측 명단은 북측 가족과 이들이 찾으려는 남측 가족 대상자 등 두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북측 이산가족의 사진과 함께 이름, 성별, 연령, 출생지, 본적지, 헤어질 당시주소, 헤어질 당시 직장직위, 그리고 남측 상봉 대상자의 이름, 성별, 연령, 본인과의 관계 등이 포함돼 있다.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서 태어나 인천상업중학교를 다니다 가족과 헤어진 강대진(남.68) 씨등 200명이며 강씨는 아버지 강익수(95),어머니 박순이(90)씨 등을 찾고 있다.
북측이 전달해온 방문단 후보자중 최고령자는 전북 남원 출신으로 헤어질 당시 서울시 영등포구 대방동에 살았던 85세의 임문빈씨로 임씨는 아버지 임명순(108), 어머니 류춘희(108),처 남상숙(82), 딸 임태혁(54).임은혁(51)씨 등을 찾고 있다.
북측이 통보한 후보자 중에는 형인 남측의 원로화가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88)씨를 찾는 북한의 공훈예술가 김기만(71)씨를 비롯, 개성검찰소 검사 출신의 신현문(69), 자강도 임업연합기업소 자재상사 사장인 로승득(69), 공화국 영웅 칭호의량판기(68)씨 등 유명인사가 포함돼 있다.
북측 후보자는 남자가 180명으로 90%를 차지하고 있고 여자가 20명으로 10%에 그쳤으며 연령별로는 ▲80세이상 5명(2.5%) ▲70대 90명(45%) ▲60대 104명(52%) ▲59세 이하 1명(0.5%) 등이다. 또 출신지역별로는 경기도 출신이 47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서울 26명 ▲경북24명 ▲충남 23명 ▲충북 20명 ▲전북 17명 ▲전남 14명 ▲경남 12명 ▲강원 10명▲제주 4명 ▲일본 3명 순으로 나타났다.
헤어질 당시 북측 가족의 직업은 ▲농업 59명 ▲노동자 46명 ▲노동자 46명 ▲사무원 12명 ▲교원 7명 ▲교수 1명 등으로 분석됐다. 또 찾는 남측 가족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178명 ▲아버지 8명 ▲어머니 6명 ▲아내 26명 ▲남편 1명 등으로 나타났다.
정부 당국자는 "방문단의 남측 후보자는 70세 이상 고령자 중심인데 비해 북측은 60대와 70대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북측이 전달해온 이산가족 방문단 후보자 의뢰서에는 현재 거주지는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북측 방문단수 대구.경북이 최고,당시 인구분포.10월사건 때문
'북측 방문단, 왜 대구가 많을까'
지난 8.15 이산가족 상봉과 지난 2일 공개된 북측 생사확인 의뢰자 명단에 이어 27일 발표된 2차 이산가족 상봉단 후보중에서도 대구.경북지역 출신이 24명으로 경기(47), 서울(26명)에 이어 많은 것으로 나타나 궁금증을 낳고 있다.
8월15일부터 나흘간 이뤄졌던 이산가족 상봉에서는 북측 방문단 100명 가운데 대구.경북 출신이 17명으로 최다를 기록했다. 또 지난 2일 공개된 북측 생사확인 의뢰자 명단에서는 지역 출신이 15명으로 서울과 함께 가장 많았다.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먼저 6.25전쟁 당시 전국 인구분포에서 대구.경북이 가장 많았다는 점이다. 통계청 경북통계사무소에 따르면 1949년 당시 전국 인구는 2천16만6천여명 정도였으며 이 가운데 경북이 320만6천여명으로 전국 시.도 중 가장 많았다. 이어 경남 313만4천여명, 전남 304만2천여명, 경기 274만명 순이었다.
따라서 인구가 타 시도보다 많았던 만큼 이런저런 사정으로 월북한 인사들도 많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다. 또다른 이유는 1946년에 일어났던, 10월 민중항쟁이라 불리기도 하는 10월 폭동이 꼽힌다.
10월 폭동은 미군정의 실정으로 인한 물가상승과 식량난, 실업난 등으로 축적된 시민들의 분노가 10월1일 대구.경북지역 노동자.농민.학생의 대거파업으로 시작, 12월 중순까지 전국에 걸쳐 발생했던 사건.
미 군정은 이에 대해 계엄령을 선포하는 한편 폭동의 진원지였던 대구에서 강력한 좌익 탄압에 들어갔다. 계명대 사학과 이윤갑(44) 교수는 "당시 미 군정의 대대적인 탄압을 피해 월북한 지역 좌익계 인사가 상당수 있었다"며 "서울 등 국내 다른 지역으로 피했던 인사들도 6.25전쟁을 전후해 결국 월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
'아버지 한번 목녹아 불러볼 것',이산가족 반세기의 기다림
○…두살때 아버지와 헤어져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교선(52.봉화군청 지적관리담당)씨는 『반세기 동안 생사조차 모르고 살아 왔으나 북쪽에 계신 아버지 정섭(73)씨가 가족을 찾는다니 전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만나면 꼭 껴안고 아버지라고 한 번 목놓아 불러보고 싶다』는 이씨 부자가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은 아버지 이씨가 수원농업기술원 학생으로 학업을 하다 전쟁때문이다.
『오랫동안 동안 기다려 왔으나 소식이 없어 생사라도 알았으면 좋겠다』며 『매일 자식을 기다리시다 7살때 돌아가신 어머니(이동계)가 저 세상에서라도 이 소식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아 하실까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돈다』고 덧붙엿다.
아버지와 연락이 두절된 이후 외가집 등지에서 어렵게 생활했다는 이씨는 『그동안 남북이산가족 상봉장면을 볼때 마다 남몰래 눈시울을 많이도 붉혔다』며 『아버지가 찾으시는 가족들 중 할아버지와 할머니, 형 주섭씨 등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누나 이제숙(76.영주시 영주동)씨와 조카 이유하(여.56.안동시 용상동)씨, 처남 이도익(78.봉화군 봉성면 봉성리)씨는 생존해 있어 하루빨리 상봉의 날이 왔으면 좋겠다』며 설레임과 그리움이 교차하는 듯 말끝을 흐렸다.
0... 1, 2차 상봉 명단에 동생의 이름이 없어 죽은 줄 알았다가 동생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북측 황병열(71.예천읍 남본리 고향)씨의 큰형 병원(81.안동시 신안동 현대아파트)씨는 그자리서 졸도하고 말았다.
잠시후 정신을 차린 병원씨는 미국에 살고 있는 동생 병우(78)씨와 서울에 살고 있는 여동생 병선.병남씨에게 차례로 전화하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병원씨는 "6.25당시 서울대병원 의사로 근무하고 있던 동생이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강제로 끌려간 뒤 소식이 없어 전쟁터에서 죽은 줄만 알았다"며 "죽기전에 꼭 동생을 만나야 한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산상봉.경협 재개,배경과 전망
북한이 27일 이산가족 상봉과 경협 재개를 통보한 것은 남북교류에 대한 북측의 '예측 불가능성'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다.
하루 전날 북측의 속도조절 요청사실을 밝히면서 남북관계가 한 두달은 순연될 것이라고 했던 박재규 통일부장관은 북측의 이같은 전격적 재개 통보로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이와 관련, 일부에서는 장관급회담 당사자로 남북관계 총책임을 맡고 있는 박 장관 조차 북측에 허를 찔렸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어쨋든 북측의 이같은 제의로 기약없던 2차 이산가족 교환방문은 11월30일에서 12월2일까지 2박3일간, 제2차 경제 차관급 실무접촉은 11월8~11일에 개최된다.
▲이산가족상봉-경협재개 배경=가장 유력한 분석은 이산가족 추가방문 사업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사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연내 두 차례 이산가족 상봉을 한다"고 공언한 바 있기 때문에 지시사항을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달 말 교환한 이산가족 생사 확인 대상자 100명에 대해서는 응답도 없이 상봉 예비후보 200명씩의 명단을 남측과 교환한데서도 감지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경제 실무접촉도 김 위원장이 밝힌 북한 경제시찰단의 남한 방문을 실시하기 위한 사전 조치가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 전문가들은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성사된 이후 북측이 다소 여유를 찾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노동당 창건 55주년 행사,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츠하오톈 중국 국방부장 방문 등으로 그동안 북측이 대남관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지만 이제 여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향후 남북관계 전망=북측이 이산가족 추가방문과 경협실무 접촉재개를 통보했지만 향후 남북관계 일정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 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2차 이산가족 상봉이 11월말에 열린다해도 당초 약속했던 12월 3차 방문단 교환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올해말까지 예정된 북한 경제시찰단의 서울 방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남한 방문, 한라산 관광단의 제주 방문, 국방장관회담 개최 등도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
북측은 남북관계를 자신들의 스케줄에 맞추는 인상이 짙다. 이산가족 교환 방문 및 경제 실무접촉의 경우도 비록 제의 형식이지만 일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 클린턴 미 대통령의 방북 가능성 및 북-일 수교교섭 재개 등 북한의 대외 일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남북관계를 장담하기는 더욱 어렵다.
정부도 현재로서는 "북측의 대남 인력과 행사 지원 능력 등을 고려할 때 남북관계 행사를 대내외 행사와 병행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곤기자 leesk@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