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향수의 시인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鄭芝溶)의 시 '향수'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일제 치하였던 1927년 '조선지광(朝鮮之光)'에 발표된 이 시는 빼어난 서정시로 평가되고 있지만,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부른 대중가요로도 널리 사랑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1903년 충북 옥천 태생인 정지용은 휘문고보 재학 시절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 일본 도오시샤대학 영문과를 나온 뒤 휘문고보와 이화여대 등에 재직하면서 한국 현대시의 금자탑을 쌓은 시인이다. 그는 우리시를 '언어의 비유'로 높이 끌어올렸으며,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한 이미지와 새로운 언어감각으로 탁월한 경지를 일궜을 뿐 아니라 그에 의해 한국시가 한 장르를 형성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1988년 해금조치 이전까지 우리 문학사의 그늘에 묻혀 있어야만 했다. 시의 경향과는 상관없이 6.25 한국전쟁 때 북으로 갔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40년 가까이 이름조차 부를 수 없었다. 그의 문학은 '남북 분단'이라는 민족적 비극과 더불어 금기(禁忌)됐었다. 해금 이후 우리 시사(詩史)는 다시 쓰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북한에 있는 그의 아들이 남한의 아버지를 찾는다고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해 놀라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북한으로 끌려갔다는 그를 북한에 있는 아들이 모르고 있다니,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그렇다면 북한의 이산가족 검증 장치에 문제가 있는지, 정말 그가 북한으로 가지 않고 전쟁통에 사망한 것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아무튼 정지용은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비극의 주인공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민족 분단과 더불어 그의 행적이 뚜렷하지 않고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오랜 세월 동안 '이념의 희생양'이 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우리시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그를 40년 가까이 우리 문학사에서 지워놓았던 엄청난 과오를 이제 와서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인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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