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요지경 위조세계

위조(僞造)에 대한 유혹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모양이다. 돈이나 공·사문서를 위조하는 것은 예전부터 있던 것. 최근엔 전자문서나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를 막기 위한 디지털 워터마킹(Digital Watermarking)마저 위조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 검찰청이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각종 디지털 범죄사범이 급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디지털 범죄의 유형에는 '해킹·바이러스유포 등에 의한 컴퓨터범죄', '인터넷을 통한 음란물 게시 및 유통' 외에 '전자문서위조·전자상거래 사기 등과 같은 사이버범죄사범' 등이 있다. 특히 전자상거래 사기 등의 사이버 범죄사범은 최근 5년간 100배 이상 급증했으며, 96년까지 주로 서울지역에 한정됐던 사이버범죄는 99년부터는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컴퓨터범죄사범은 98년 267건 453명에서 올 상반기엔 542건 772명이 검찰에 적발된 것으로 밝혀졌다.

예나 지금이나 위조는 첨단을 이용한 전쟁이다.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온갖 신기술들이 동원되고, 가짜를 가려내기 위한 기술도 속속 등장한다. 특히 컴퓨터 기술의 급성장으로 인해 놀랄만큼 정교한 위조물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위조물은 지폐 뿐 아니라 사진물, 영수증 등 다양하다. 고성능 스캐너를 이용해 원판을 화면에 띄워놓은 뒤 이를 합성시키거나 변형시켜 원본과 다른 위조본을 만들어낸다. 이들 위조물은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밀하다.

문서의 진위여부를 밝혀내는 방법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때문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분석실과 같은 전문기관이 필요하다. 문서 위조를 판단하는 방법은 크게 가시광선, 적외선, 자외선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눈으로 보기에 똑같은 도장을 구별해 내는 방법을 살펴보자. 먼저 영수증 등에 찍힌 도장 문양을 촬영해 TV 모니터에 확대해 띄워본다. 그런 뒤 진짜 도장자국을 같은 방법으로 화면에 띄워 이 둘의 일치성 여부를 판단한다. 만약 똑같은 도장이라면 서로 어긋나는 부분이 없겠지만 위조한 도장이라면 조금이라도 틀린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적외선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적외선은 어떤 물질의 탄소 함유량이 많을수록 잘 흡수되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원래 있는 글씨에 다른 잉크를 사용해 덧입히는 경우 적외선 검사를 하면 확연히 구별된다. 만약 위조가 의심되는 문서가 있다면 이를 '고정밀 비교확대투영기'에 올려놓고 적외선 필터를 통해 보면 탄소 함량이 적은 필기구로 덧입혔을 경우 그 부분만 흐리게 보인다.

아예 잉크를 지워버리는 특수 화학약품으로 처리한 뒤 아예 새로 썼다면 어떻게 구별할까? 이럴 때 유용한 것이 바로 자외선 검사다. 자외선은 화학반응에 민감한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화학처리한 부분을 자외선으로 투영해보면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자외선을 컬러복사기나 고성능 레이저프린터를 이용해 위조한 지폐를 감식해내는데도 탁월한 성능을 발휘한다. 진짜 지폐에는 자외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물질을 발라놓았다. 복사기나 프린터로는 이런 물질을 바를 수 없어 위조를 감지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선 국내 업체들이 자체 기술로 고성능 위폐 감지기를 속속 개발해내고 있다. 엠텍월드가 개발한 위조지폐 감식기 '머니체크'는 컬러복사기로 만든 위폐는 물론 일명 '슈퍼노트'라 불리는 정밀 인쇄된 위조지폐도 식별이 가능하다. 디지탈로직은 단일 방식의 기존 제품과 달리 적외선, 자외선, 자성·지질 감식 등 4가지 분석방식을 동시에 적용하는 고성능 위폐감식기를 개발했다. 감식속도는 초당 최대 25장이며 새로운 슈퍼노트 출현시 인터넷을 통한 데이터 업데이트로 항상 최신 기능을 보유할 수 있다.

사실 현재 전세계에서 사용중인 위폐감식기 대부분이 위폐제조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조판기에서 생산된 슈퍼노트에 대한 감식 능력은 이미 한계에 봉착한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때문에 각 국, 특히 미국은 달러화의 도안을 조금씩 바꾸고 위조방지책을 덧붙이는 등 대비책을 내놓고 있다.

96년 바뀐 새 달러화의 앞면엔 몇가지 위폐 방지장치가 첨가됐다. 기계로 감지할 수 있는 특수섬유를 지폐용지 속에 포함시키고, 지폐 주변엔 불빛에 비춰볼 때만 보이는 가는 선을 넣었다. 색깔도 정면에서 보면 금빛이 나지만 비스듬히 바라보면 초록색으로 변한다. 육안에는 직선으로 보이는 선도 정밀기계로 관측하면 물결무늬다.

또 달러화 앞면 초상화의 인물 크기를 조금 키워 왼쪽으로 약간 옮겨놓고 똑같은 인물 초상화를 오른쪽에 '워터마크' 무늬로 새겨넣었다. 워터마크는 불에 비춰봐야만 모습이 나타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사용하는 방식.

그러나 위폐 방지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이에 질세라 지폐를 위조하기 위한 기술도 날로 새로워지고 있다. 특히 전자화폐가 등장함에 따라 해킹을 통한 디지털 머니의 위·변조 위험성도 제기되고 있어 위폐는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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