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일)는 '시(詩)의 날'이었다. 이 날을 맞아 대구의 시인들도 '2000 대구 시의 가을'이라는 시 잔치를 마련했다. 대구시인협회가 오후 7시부터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가진 '시와 음악과 춤의 만남'과 봉산 문화거리의 갤러리 소헌과 갤러리 대림당에서 이 날 막을 올려 6일까지 펼치고 있는 '시와 그림의 만남' 행사가 그것이다.
'시와 음악과 춤의 만남'에는 시인들의 자작시가 낭송되고, 시에 곡을 붙인 예술가곡들이 성악가.피아니스트들에 의해 무대에 올려졌다. 시를 바탕으로 창작한 춤과 대금연주가 있었고, 시에 관한 강연도 베풀어졌다. 또한 '시와 그림의 만남'은 시인 104명과 화가 40명이 참여하고 있는 대규모 전시회다.
하지만 이 같이 다채롭고 풍성한 시의 가을걷이 잔치에도 불구하고 서글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까닭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시인들이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어울어져 그 영역 넓히기에 안간힘을 쓰며 독자를 찾아나서는 이 이벤트가 마련된 배경이 바로 시가 죽어가는 위기와 마주치고 있다는 반증에서 비롯되고, 그 때문에 시도된 몸부림의 소산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구텐베르그 이후 활자매체는 우리 생활 뿐 아니라 정신문화의 무게에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 왔다. 문학은 오랜 세월 동안 그 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찬연한 빛을 뿌려 왔으며, 활자 매체의 중심에 자리매김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벌써 오래 전부터 문학이 사양길을 걷고 '시가 죽어간다'는 비관론이 널리 퍼졌다. 실제 독자들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어쩔 수 없이 위기와 마주쳐 내리막길을 걸어온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시의 날'의 제정도 따지고 보면 날이 갈수록 시가 변두리로 밀려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멀어진다는 데 그 뿌리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시가 죽어간다
영상화 시대를 맞아 문학을 비롯한 인쇄 매체가 제공하던 재미와 영향력이 상당 부분 영화.텔리비전.컴퓨터 화면 등으로 넘어가면서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문인들에게는 자괴감을 동반하게 된 지도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지난날 책상 앞에 앉아 문장 수업을 했을 젊은이들이 캠코더를 들고 거리로 나가는가 하면, 문학에 열정을 쏟을 법한 재능과 자원이 영상매체와 가까운 문학의 변두리로 가고 있는 분위기도 속도가 붙고 있다.
문학은 가치 있는 경험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임에는 변함이 없다. 시인.작가들이 진실한 체험과 사상.느낌을 녹여 전달하고, 이를 읽는 사람들은 정서적 반응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문학작품을 읽는 독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이나 현실세계와 마주치면 희열을 느끼고 자신의 삶에도 그런 의미가 있음을 확인하면서 안도하게 되기도 한다. 때로는 미처 생각하거나 느끼지 못했던 세계관과 인생관을 만나면서 놀라거나 분노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문학의 존재 이유와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문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뒷걸음질하거나 황폐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일까. 문학의 전망은 곧 현실의 진단이며, 그것이 바탕이 된 우리 삶의 전망이라는 생각을 해본다면 그런 비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문인들의 치열한 사명감 필요할 때
그러나 문학이 위기에 놓이고 그 장래가 어둡다고 하더라도 문인들이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문학이 살아 남고 우리의 정신문화가 상승작용을 하려면 오히려 달라진 문화적 환경에 대한 '반발의 정신'을 강력한 동력으로 삼는 지혜와 슬기가 요구된다. 시대적 흐름과 '비인간화'와는 정면으로 부딪혀 나가는 치열성이 담보돼야 한다.
문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 그 옹호가 지상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어떤 형태로든 살아 남아야 하고, 이같은 과제들을 풀어줄 수 있어야만 한다. 문인들의 치열한 도전과 사명감, 시대를 박차고 오르거나 거슬러 오르면서까지 '신성한 언어'와 '정신의 깊이와 높이'를 지키고 새롭게 창출하려는 열정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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