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당경쟁이 시장왜곡 자초

'10개월 무료 구독에 수십만원짜리 경품까지'

일부 신문사들에 의한 신문 부당 판촉 경쟁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IMF로 한동안 주춤했던 부수 확장 경쟁이 일부 중앙지들의 주도로 올들어 다시 고개를 들면서 신문 판매질서가 무너지고 '시장왜곡'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판매를 둘러싼 신문지국간의 폭력사태가 재발되고 있으며 경품 경쟁과 무가지 남발 등 갖가지 구태가 재연되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은 학계와 언론노조 등에서 "판매 부수가 많은 과점상태의 신문들이 자신의 지배권을 확대하기 위해 무리한 불공정 판매에 나서고 있다"며 "이로 인한 신문시장의 교란이 건강한 여론형성과 여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낼 정도다.

부당 경쟁의 대표적인 사례는 신문 한 부 확장을 위해 뿌려지는 고가 경품들. 대구.경북 지역의 경우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일부 중앙지들이 에어콘형 선풍기나 자동차 공구함, 차량용 핸즈프리 등을 꾸준히 경품으로 제공하고 있다.

북구 침산동 모 아파트에 사는 최은주(30.여)씨 "지난 여름부터 몇몇 신문사 판촉사원들이 선풍기형 에어콘 등을 내세우며 거의 매일 아파트 입구와 주차장에서 구독 권유를 해 오고 있다"며 "최근에는 가정용 분수대까지 등장했다"고 말했다.

경품으로 제공되는 판촉상품의 가격은 구입단가를 기준으로 최소 2만원에서 5만원. 일부 지역에서는 12만원짜리 비데기와 수십만원짜리 제주도 여행권 등 초고가 상품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또 퀵보드를 타던 어린이가 사망한 지난달에는 모 중앙지가 '퀵보드 안전 위험'이라는 기사가 실린 자사 신문과 함께 퀵보드를 경품으로 돌리다 주민들에게 항의를 받는 웃지못할 일도 일어났다.

모 신문 지국장은 "뻐꾸기 시계에다 위성안테나로까지 발전했던 경품이 IMF로 한동안 사라졌으나 올해 초 일부 신문이 다시 레저용 TV와 믹서기, 교자상 등을 판촉 신문으로 돌리면서 경쟁이 촉발되고 있다"고 밝혔다.

무차별적인 무가지 살포도 여전하다.

전국 주요 신문들이 회원으로 있는 신문협회가 약관으로 정한 2개월 무료 구독 상한선은 무너진지 이미 오래다.

일부 신문의 경우 구독을 전제로 10개월까지 구독료를 받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스포츠지나 경제지 등을 끼워 팔거나 정상 대금의 절반 값에 구독료를 받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경쟁지 구독을 막기 위한 자사 신문의 무가지 배포라는 비도덕적 행태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달서구에 사는 박태규씨(33)는 "지난 3월부터 모 신문 사원이 찾아와 경품과 함께 석달간 무료 구독을 집요하게 강요해 왔다"며 "몇차례나 거절했으나 결국 지난달 8개월까지 무료 구독을 조건으로 신문을 받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러한 경쟁이 결국은 경기도 이천 지역 등지에서 판촉사원간 잇단 집단 패싸움으로도 이어지기도 했다. 전국언론노조의 한 관계자는 "살인 사건으로까지 치달았던 신문간 경쟁이 IMF 사태 이후 잠시 주춤했으나 올초 벤쳐붐을 타고 광고 수입을 올린 몇몇 중앙지들이 다시 무차별적인 경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서울 소재 다른 신문이나 지방지들은 이들의 물량 공세에 살아남기 위해 어쩔수 없이 방어적인 불공정 판매에 참가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이는 건전한 신문사의 재무구조 악화및 국가 경제에도 피해를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학계에서는 일부 중앙지들이 건전한 지면 경쟁보다 상식을 벗어난 부수 확장에만 몰두하는 이유에 대해 발행부수를 늘려 광고수입을 올리려는 값싼 상업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판매시장 왜곡'에 대해 신문사와 언론단체, 학계나 등 각계의 '자정 노력'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국 420여 곳의 판매지국장들로 구성된 한국신문판매총연합회는 지난 7월 기자회견을 갖고 "더 이상 본사 강요에 의한 무가지 살포나 고가경품 경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불공정경쟁을 막기 위한 자정 선언을 하기도 했다.

언론노동조합도 최근 '신문불공정 판매 고발센터'를 설치하고 신문시장 왜곡을 주도하고 있는 중앙지 3개사를 상대로 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신문협회가 경품과 무가지 금지를 내용으로 한 '변칙 판매행위 제한'을 결의하고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것도 자정노력의 하나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이 올바른 결실을 낳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96년 판매 경쟁을 둘러싼 중앙지 지국원간의 살인사건 발생 후 수차례 자정 결의를 담은 '약관'이 만들어졌지만 일부 신문의 위약으로 번번히 실패로 돌아간 때문이다. 신문 협회 관계자는 "지난 70년대 모 신문이 설탕을 경품으로 돌리며 촉발된 신문사간 과당 경쟁은 30년 묵은 우리의 고질병 중 하나"라며 "국가 전체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건전한 시장경제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만큼 대형 신문사부터 최소한의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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