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공정경쟁규약'이 제정과 개정, 재개정의 길을 걸으며 제재수단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은 신문판매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다. 그렇다면 왜 규약이 탄생하게 됐을까. 그 역사는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신문의 역사에서 무차별 출혈경쟁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65년 삼성그룹을 등에 업은 중앙일보의 출범이 계기가 됐다. 시장을 뺏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들의 다툼 속에서 무가지 살포는 유일한 독자층 확보와 시장확장의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또 80년대초 본격 시작된 증면 경쟁과 함께 구독료의 대폭 인상은 시장의 급속한 재편을 불러왔고 그에 따른 무가지 살포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것이 88년 신문협회가 구독료, 발행면수 자율경쟁을 결정하면서 무차별적인 경쟁체제에 들어갔고 시장질서를 지켜주던 최소한의 룰은 헌신짝이 돼 버렸고 죽기아니면 살기 식의 '전쟁'은 더욱 확대 일로를 걸었다. 또 80년대 후반과 90년대 들어서는 사회의 민주화 추세에 맞춰 신문사 수의 증가, 일부 신문의 신문시장 점유율 과점, 선두다툼에 동원된 패권주의 등이 등장했고 급기야는 이런 경쟁에서 도태돼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는 신문사가 속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경쟁은 급기야 96년 7월15일 신문판매역사의 한 획을 긋는 전대미문의 살인사건으로 까지 연결돼 공정경쟁규약의 출현을 촉발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경기도 고양시 모 지국끼리 관할권 다툼 끝에 조선일보 지국 총무가 흉기에 가슴을 찔려 숨진 것이다.
이에 앞서 같은 해 5월 중앙일보와 국제신문의 판촉사원간의 부산 해운대 난투극으로 중앙일보 판촉팀 2명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 더 큰 참사를 예고했다.
규약 제정 당시의 약속은 금방 헛구호가 돼 버렸다. 고양 살인사건 이후로도 폭력충돌 사건은 꼬리를 이었다. 99년 7월11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경기도 일산지국 사람들이 판촉영업활동을 벌이는 현장에서 충돌하는 폭행사건이 벌어졌고 올 6월10일에는 중앙일보 경기도 이천지국이 경품인 선풍기를 제공하던 중 조선·동아·한국일보 지국원 30여명과 패싸움을 벌인 사건이 발생했다.
물론 IMF체제에서 신문의 감면과 감부 결의를 수반한 신문의 내실경영 바람 탓에 과당경쟁은 다소 고개를 숙이는 듯했으나 지난해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회복된 광고시장 탓에 다시 과열의 수준을 넘어선 위기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에 따라 97년 경품제공과 이삿짐 나르기 등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개정이 이뤄졌고 99년에는 무가지를 2개월로 제한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또 올 2월에는 1년 구독료의 6% 범위 내의 가치를 지닌 경품제공을 수도권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특례규정을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규정 역시 지켜지지 않아 고가 경품들이 경쟁적으로 도입됐고, 과점 신문사들에 의해 경품제공 행위가 수도권의 범위를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물량공세에 밀린 지방언론사의 위축현상이 두드러져 왔다. 이에따라 1일 다시 규약을 개정, 경품을 전면 금지하고 제재를 대폭 강화하게 된 것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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