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숫자놀음' 퇴출발표 혼란만 가중

채권금융단이 52개 기업을 정리대상(퇴출)으로 발표하면서 이미 법정관리중이거나 청산절차를 밟는 업체까지 대거 포함했고 일부 부실기업에 대해 판정을 유보하는 등 '숫자놀음'에 급급, 기업 구조조정 의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특히 금융계, 증권시장 안팎에는 발표 며칠 전부터 법정관리가 진행 중인 기업의 퇴출설 등 온갖 흉흉한 소문으로 기업 진로에 악영향을 미치는 등 시장혼란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또 채권금융단이 의견 개진 차원이라고 하지만 법원의 고유권한인 법정관리 여부에 대해서까지 언급, 혼란을 부추기는 것은 물론 '월권행위'란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3일 발표된 법정관리.청산 판정 기업은 모두 29개이나 이 가운데 이미 법정관리.화의.청산 절차를 받는 기업을 제외하면 정상기업은 9개사에 그쳤다.

퇴출에 해당하는 청산과 법정관리기업은 이미 기업으로 생명이 끝난 업체가 대부분으로 부실기업에 대한 과감한 퇴출 의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이다.

법정관리 대상에 선정된 지역의 청구는 이미 법정관리 상태인데도 발표 며칠 전부터 퇴출설이 나돌아 주가가 폭락했다가 퇴출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자 다시 반등되는 등 투자자들이 며칠동안 혼란을 겪었다.

우방과 서한도 이미 최종부도 처리돼 법정관리를 신청한 상태인데 다시 정리대상(법정관리) 기업으로 분류돼 협력업체, 언론사, 입주예정자들로부터 이번 조치의 의미를 묻는 전화가 끊이지 않아 해명을 하느라 홍역을 치뤘다.

청산 대상이 된 대한중석의 경우 지난 98년 청산이 결정돼 현재 청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삼성자동차, 한라자원, 기아인터트레이드 등도 이미 청산됐거나 진행 중인 업체인데도 다시 청산대상에 포함됐다.

정리대상에 포함된 서한의 한 관계자는 "발표 며칠 전부터 언론 등에 퇴출대상으로 실명이 거론돼 현재 진행 중인 법정관리 절차에 악영향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다"며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을 굳이 정리대상 기업에 끼워 넣은 이유를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와함께 현대건설과 쌍용양회 등 일부 부실 대기업에 대한 결론을 유보하거나 회생가능성이 의심스런 일부 워크아웃 대기업을 회생시킴으로써 시장 불안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역 경제계 한 관계자는 "정부와 채권금융단은 당초 대대적인 퇴출을 할 것으로 발표해 시장을 온통 불안케 해놓고 정작 퇴출 대상 기업의 대부분을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한 기업으로 매꾼 것 같다"며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켜 금융시장의 투명성과 시장질서 복원이란 구조조정 취지를 무색케 해 되레 시장 불신이 조성될까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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