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기 어려워진 오촌-고유가.자원고갈.가격하락...

어장이 줄어든데다 어자원마저 고갈되면서 앞길이 막막한 어민들의 한숨 소리가 을씨년스런 포항.영덕.울진 등 동해안 항.포구.

어민들의 생계터전인 '문전옥답'을 그토록 쉽게 일본측에 내줘 버린 정부의 어업 협상력에 대한 분통과 어자원남획이 방치되는 수산정책에 불만을 터뜨려 보지만 답답한 가슴은 풀리지 않는다.

동해안 최대 어업전진기지인 구룡포항은 요즘 본격적인 대게조업철이 시작됐지만 수년전과 같은 만선의 기대와 설렘은 찾기 힘든 모습.

34년째 바다생활을 하고 있는 구룡포항 선적 대게자망어선 39t급 승림호 선장 이두생(47)씨가 왕복 40시간이 소요되는 중간수역에 일주일간 출어해 잡아온 대게량은 1천여마리. 어업협정전의 3천~4천마리와 비교하면 3분의1도 채 안되는 물량이다.

이씨가 6, 7일이 걸리는 대게조업에 지출되는 비용은 700만원. 출어를 위해 실어야 할 면세유는 40드럼. 지난해까지 3만원대에 있던 면세경유가격은 현재6만7천366원. 여기에 윤활유를 포함하면 출어경비중 기름값이 차지하는 비중은 280만원. 나머지는 그물 손실비와 선원 부식비 등이다.

하지만 김씨가 잡아온 대게의 10일 위판액은 1천만원선. 자신을 포함 승선인원 9명의 일주일간 인건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

어렵게 대게를 잡아왔지만 대게값은 수입되는 북한산과 러시아산 대게 때문에 위판가격도 예년에 비해 너무 낮게 형성돼 일할 힘도 나지 않는 형편.

이씨는 "중간수역은 전쟁터"라고 말했다. 어장을 모두 뺏긴 탓에 조업할 데가 없다보니 한정된 조업구역을 놓고 국내어민은 물론 일본인들과의 마찰이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것. 대게가 잡히는 347, 346, 345 중간수역은 3분의1지역에서만 조업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수심이 깊어 조업이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 국적의 대게잡이배들이 모두 이곳에 몰리는데다 일본 저인망까지 가세하면서 조업질서가 아수라장이 되기가 예사. 쳐놓은 그물이 다른배의 그물에 의해 얽히고 설키는데다 못된 일본배로 인해 언제 그물훼손 피해를 입을지 모를 상황이다.

이씨는 그물을 한달간 쳐놓은 뒤 건져올린 대게가 이정도이니 앞으로 한달에 세 번, 두달에 일곱 번꼴로 출어해 그물을 걷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한 뒤 경비를 못건지면 대게잡이 기간에 상관없이 자진철거하는 도리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로전쟁은 중간수역 뿐만 아니다. 어장축소로 연근해 어선들이 동해연안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오징어채낚기와 트롤선, 자망과 저인망, 자망어선끼리 서로 좋은 포인트를 차지하기 위한 조업전쟁이 다반사로 빚어지고 있다. 남이 쳐놓은 그물위에 다시 그물을 놓거나 다른사람의 그물을 끊고 자신의 것을 끌어 올리는 바람에 그물훼손도 잇따르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무차별적인 남획에 대한 우려. 실제 울진군의 지난달까지 수산물어획량은 2만3천452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만874t보다 2천500여t가량 늘어나 이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올해는 동해안의 주어종인 오징어의 연안어기가 예년보다 한달가량 앞당겨 종료되면서 어민들의 소득감소는 물론 수협마다 위판고의 대폭 감소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지난해 오징어 위판물량이 1천500만t을 기록했던 구룡포수협은 금년에는 1천만t으로 오징어 물량이 3분의1이나 줄었다. 이로 인해 지난해 580억원이던 위판고도 금년에는 530억원으로 대폭 축소조정된 채 목표달성에 비상이 걸렸다.

강구수협도 207억원에서 140억원으로 오징어 위판고 목표치를 낮춰 잡고 있는 실정.

한.일어업협정에 따른 어장축소로 홍게 등 각종 어종의 어획량이 대폭 줄면서 동해안 수산물 가공공장이나 건조업체들도 깊은 시름에 잠겨있다.

80년대 이후 설립된 이들 업체들은 호황기에는 제품을 전량 일본 등지로 수출하면서 공장마다 200~300명의 인력을 채용할 정도로 호경기였으나 최근들어 원료난으로 작업량이 크게 감축, 공장마다 가동률이 떨어져 인력도 절반수준으로 줄인 상태. 울진군 가공공장 관계자는 "1차산업인 수산업 기반이 흔들리면서 2차산업인 수산물 가공업까지 도산위기에 처해 있다"며 특단의 정부 조치가 없는 한 사업을 포기해야 될 처지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정책 실패에 대한 어민들의 비난 목소리도 성난 파도처럼 드세다.

높은 가격을 받고 자신의 배를 판 감척대상 선주들이 제3자나 직계존.비속 명의로 경매에 참가, 저가에 감척어선을 경락받아 다시 조업에 나서는 사례마저 불거지면서 감척사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일고 있다.

지난달말 울진군 후포항소속 소형 채낚기 협회 회원들은 대형선박 선주10여명이 정부의 감척사업의 허술함을 악용, 차익만 챙기고 다시 조업에 나서자 출어를 거부한채 소형어선들도 감척사업에 포함시켜 달라며 시위를 벌이는 등 반발하고 나섰다.

어촌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선원난도 심각한 문제. 젊은 사람들이 힘들고 위험한 배타는 일을 기피하면서 일부 항.포구는 힘쓰는 젊은 선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이 때문에 중국인 등 외국인 선원을 고용하고 싶어도 관련 규정이 배한척당 2명이내, 전체선원의 30%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해놓고 있어 근본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게 어민들의 주장.

총체적 위기로 치닫는 국내 어업을 되살리기 위한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어촌의 피폐화는 가속될 것이 불보듯 뻔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포항.정상호기자 falcon@imaeil.com

영덕.임성남기자 snlim@imaeil.com

울진.황이주기자ijhw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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