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휴대전화 유감

내가 휴대전화를 가지게 된 것은 지난 여름이었다. 평소 휴대전화의 편리함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실 되도록이면 가지지 않으려 했다. 요금 때문만도 아니고, 학생들에게 과소비 자제를 솔선수범하기 위해서만도 아니다. 공중도덕을 해칠까 두려워는 더욱 아니다.

정보화사회에 접어든 오늘날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통신, 정보기기가 놀랄만한 기능을 자랑하며 등장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갈수록 더 바쁘고 무거운 일상사에 더한층 짓눌리고 있다. 그리고 '사회조직'이라는 괴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신만의 영토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휴대전화도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는 공범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정권만 벗어나기만 하면 그만인 집 전화와는 달리 어디를 가든 이놈은 끝까지 따라 온다. 침실까지 감시하던, 그 옛날 왕의 시종처럼 몸에 착 달라붙어 원하지도 않는 일상과 시시콜콜 쉴 새 없이 교신한다. 지난 1학기만 해도 학교 비상연락망에서 휴대전화 번호 난이 비어 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무언의 구매 압력, 그리고 시대에 뒤떨어지느니 운운하는 가족의 핀잔도 그런대로 잘 견디어냈으나 그 방어선은 한 휴대전화 판촉 친지에 의해 너무도 쉽게 무너져 결국 구입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가지고 다니기 반, 두고 다니기 반이다.

그런데 인터넷도 할 수 있는 다기능 휴대전화를 두고 왜 착잡한 생각이 들까. 오래전 셋방 살던 시절 , 주인댁 전화를 이용하던 때가 생각난다. 한번은 학생 귀가 문제로 자정이 지나서 학부형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부랴부랴 잠자리를 걷어치우고 미안해 할까봐 얼른 자리를 피해주는 주인댁 부부의 따뜻한 배려가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인정과 사랑은 완벽한 편리속에 깃들기 어렵다. 불편과 모자람이 없는 사람들끼리 무엇을 나눌 것인가. 편리만이 행복의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다. 아무리 편리한 기기가 나오더라도 약간의 불편은 예비해 두자. 인정과 사랑이 깃들 여지를 만들어두자.

경주 아화중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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