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노숙자(홈리스) 원조는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다. '소유'보다 '자유'를 추구했던 그는 알렉산더 대왕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햇살을 가리고 있으니까 조금만 비켜달라'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사실 노숙자 문제는 지구촌의 큰 고민거리이며, 끊임없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보다 형편이 훨씬 나은 선진국들은 더 심각하다. 독일은 75만명, 영국은 35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선진국들의 노숙자들과 우리나라의 경우는 근본적으로 그 생성 배경부터 다르다. 서양의 홈리스들은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거리로 뛰쳐나온 '부랑인'이 많다면, 우리는 대부분이 경제 위기 상황이 낳은 구조적 희생자들이다. 기업 퇴출과 부도,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 명퇴 등 대량 실업 사태로 졸지에 거리로 내몰린 '멀쩡한 사람들'이 많다. 날씨가 쌀쌀해진 이즈음 세간의 화두(話頭)는 다시 '실업'과 '노숙자' 문제다. '실업자 100만명 시대'가 다시 온다는 '잿빛 전망' 아래 다시 노숙자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내년 초엔 서울만도 5천명 선을 돌파, 사상 최악의 상태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기도 한다. 더구나 신규 노숙자도 40%를 차지할 정도로 빠른 확산세를 보이고 있어 큰 문제다. 각급 구호단체들이 지원활동을 벌이기는 하지만 역부족이다. 게다가 이들의 보살핌이 아무리 따뜻해도 아픈 마음까지 쓰다듬어 줄 수는 없다. 이들에게 더 절실한 것은 떳떳한 일자리와 평온한 가정이다. '어머니/…돌아가고 싶습니다. 가서/…〈중략〉…/남은 눈물을 펑펑 쏟고 싶습니다/그러나 지금은 갈 수 없습니다'(김영수 '서울역 풍경')라는 절규는 노숙자들의 내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난의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옛말도 있지만, 이들을 구제할 길은 없는 것일까. 노숙이 장기화되면 육체적·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 마련이며, 선진국형 홈리스마저 많아지게 될는지도 모른다. 자활 의지를 심어주고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위기 조성과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의 노숙자들에게 아직은 '디오게네스의 햇살' 정도는 사치스러운 것이지 않은가.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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