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에 살얼음 끼는 것을 보니, 군불을 지필 때가 된 것같다. 옛날에는 군불 정도는 아이들의 일이었다. 불쏘시개로는 주로 보릿짚이나 감나무잎 또는 갈비(소나무잎)를 썼다. 특히 갈비가 나란히 타들어 가는 것을 보노라면, 어린 마음도 함께 따뜻하게 가라앉았다. 콩깍지가 달린 콩대궁을 때면 탁탁하고 터지는 소리가 폭죽소리 같았지만 불은 약한 편이다. 대나무는 그 방에 자는 아이들이 대나무처럼 마른다고 때지 않았으니, 요즘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이 때면 제격이겠다. 아카시아나무는 두꺼운 가죽장갑을 끼고 때야 할 만큼 가시가 많았지만, 피시시 타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얗고 늘씬한 참나무 장작을 때는 날이면 한 아궁이 가득 지펴놓고 다른 일을 할 만큼 여유가 있었다. 참나무는 불꽃도 오색으로 아름답고 오래 타지만, 특별한 날에나 때는 호사스런 땔감이었다.
어쨌든 그때는 스스로 군불을 지피지 않은 자는 따뜻한 밤을 기대할 수 없었다. 놀러 다니느라 정신이 팔려 군불을 지피지 못한 밤에는 턱을 부딪히며 새우잠을 자야했다. 해지기 전에 넉넉히 불을 지핀 날에는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온 세상의 아름다운 꿈을 맘껏 꿀수 있었다. 세상이 그냥 따뜻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배운 것일까.
오늘은 내가 거의 취미로(?) 사용하는 아궁이에 참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폈다. 불꼬리마다 찬란한 사연이 있었지만, 흰 재를 덮어쓰며 숯으로 스러지는 모습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스스로 불태우지 않는 자는 결코 다른 이들을 뜨겁게 데울 수 없나니…"
우리도 어쩌면 각자의 생명을 태우고 있는 장작이 아닌가? 단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위해 뜨겁게 타오를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
대구가톨릭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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