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잠재적 경제위기

최근 들어서 한국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는 것 같다.국제유가가 급등하고 반도체가격이 하락하면서 성장.물가.국제수지 등 거시지표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대우자동차 매각 실패와 금융권 구조조정 지연과 재벌기업들의 유동성 부족으로 인해 심리적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대치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권, 대우자동차 매각 실패, 두 달 넘게 끌어왔던 의약분업의 해결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정부의 문제해결 능력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감 상실은 우리 경제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국민들의 이와같은 불안감을 반영하여 증권시장은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금융경색으로 인해 기업의 도산이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 우리경제는 지표상의 고성장에도 불구하고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뚜렷한 괴리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올 3분기 성장률은 9.2%로서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위기의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민간소비가 2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서는 등 내수 증가율이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또한 설비투자도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4.9%의 성장률을 보여 내수위축을 초래하고 있는데 국제유가 상승이 본격화되고 현대건설의 유동성 부족과 대우자동차 매각 실패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한 지난 8월말 이후 민간소비와 투자의 감소세가 뚜렷하다. 따라서 구조조정이 지연돼 소비심리 위축이 장기화될 경우 우리 경제는 장기침체국면에 들어설 가능성도 높다.

이러한 경제상황에 대해서 정부와 야당의 인식은 각기 다른데 정부는 지난 97년과는 상황이 다르다며 위기는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 근거로는 부실금융기관과 기업이 상당수 정리되고 외환보유액도 충분하며, 경상수지도 흑자를 내고 있다는 점을 든다. 즉 "한국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심리적인 불안이 실제보다 더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 경제불안의 요인은 고유가, 반도체값 하락, 포드의 대우자동차 매입포기, 동아시아의 금융위기 조짐, 국민들의 집단이기주의 등 외부적 요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야당인 한나라당은 현재의 경제불안은 정부 경제정책의 잘못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점을 강조, 경제 위기의 원인을 내부적 요인으로 돌리고 있다. 특히 정부가 경제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대증요법으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임기응변식 미봉책으로 경제정책을 운용한 점이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감을 상실하게 했으며 이로 인해 경제불안이 가중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입장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경제가 여러 가지 불안 요인이 잠복돼 있는 '잠재적 위기상황'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뒤늦게나마 경제위기의 실상을 깨닫게 된 것은 다행인 것 같다. 정부가 최근에 공적자금 추가조성과 제2차 기업.금융 구조 조정계획을 단행한 것도 이같은 정부의 현실인식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 경제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것은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현재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파생되고 있는 금융경색이 우리경제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우차 매각을 포함한 금융.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구체적이며 확실한 청사진을 제시함으로써 정부의 확고한 정책의지를 표명, 이를 통해 국민들의 신뢰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는 금융부실의 요인들을 과감하게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금융구조 조정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는 시장원리에 따라 부실기업들에 대한 퇴출을 더욱더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경제에 영향이 있더라도 금융시장의 빠른 정상화를 위해서는 이를 추진해야 한다. 금융구조 조정이 지지부진하는 경우 국민들의 개혁 피로증을 가중시켜 향후 구조조정에 대한 반발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현재의 경제위기가 정부의 문제해결 능력 즉 정책에 대한 신뢰의 위기로부터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 회복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시적 증시 부양책과 같은 임기응변식 정책대응 보다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시장질서를 확립하고 이를 통해서 경제문제를 풀어갈 것이라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주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에서 정부의 지도력에 대한 믿음이 회복될 때만이 경제불안이 진정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환율이 상승하는 등 외부적 여건이 불리해 질수록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중요하다.

중앙대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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