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스크린 리뷰-쿤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구름 저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과학자들이 오지 탐험에 나서 현지인을 고용해 등짐을 나르게 하는데, 어느 순간 짐꾼들이 움직이질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서야 짐꾼들이 다시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바쁜데 왜 그랬느냐고 묻자 그들은 이렇게 얘기했다. "몸만 열심히 가고 영혼이 오지 않아서…"

아름다운 것은 정신이다.

돈이 모두의 전부가 된 현대사회. 물신(物神)이 어느 신보다 가공스런 존재가 돼 우리를 옥죄고 있는 2000년 11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쿤둔'이 '달라이 라마의 방한 불허'라는 정부의 방침속에서 우울하게 개봉됐다.

'쿤둔'은 마틴 스콜세지라는 반골 기질이 있는 감독에 의해 지난 97년에 제작된 달라이 라마 영화다. '쿤둔'(Kundun)은 티베트어로 '고귀한 존재'. 바로 달라이 라마를 가리키는 말이다.

두 살 배기 아이가 13대 달라이 라마의 재림으로 발견, 14대 달라이 라마가 되지만 정권 모택동 공산당의 침입으로 티베트에서 쫓겨나기까지의 생애를 그리고 있다. 마틴 스콜세지는 정직하면서도 힘있는 연출로 티베트의 망명지도자의 생애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쿤둔'에서는 알만한 배우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달라이 라마의 조카가 생모역을, 티베트의 마지막 총리의 아들이 아버지 역을 맡았다. 나머지 승려들도 대부분 아마추어다. 중국 정부의 반대로 카사블랑카 전역에 세트를 세워 촬영을 했다.그럼에도 '쿤둔'의 스탭진은 화려하다. 'E·T'의 작가 멜리사 매티슨이 시나리오를 썼고, '파고''바톤핑크'의 로저 디킨스가 촬영을 맡았다. '순수의 시대'의 필 마로코가 의상과 미술을 담당, 50년대 티베트인들의 모습을 재현했다.

'쿤둔'에서 연기와 구성, 시나리오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흥행에 관계없이 한 망명인의 생애를 다루겠다는 마틴 스콜세지의 고집스런 힘이 돋보인다. 또 하나 영화 내내 관객의 머리를 짓누르는 것은 티베트란 단어다.

척박한 땅, 1959년 전체 인구의 20%인 120만 명이 중국 공산당에 학살되면서도 비폭력으로 일관하는 국민들, 2살 아이를 전직 지도자의 환생으로 여기는 종교적 신념, 역사의 굴절이 있을 때마다 정신과 영혼에 결정을 맡기는 여유로움. 그러한 정신적 풍요가 한없이 부러워지는 영화다.

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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