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에 '하찮다' '시시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구다라나이'라는 말이 있다. '구다라(백제)'와 '나이(없다, 아니다)'라는 단어가 합쳐진 말이다. 백제 문물이 많이 전래되던 옛날 일본에서는 '구다라'가 외래 문물의 대명사였고, 백제 것이 아니면 좋지 않다는 뜻으로 쓰였음을 짐작케 한다. 일본의 고대 문물은 한반도를 통해 전래됐다는 주장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 학자들에 의해서도 빈번하게 제기돼 왔었다. 지난해는 도호쿠대학 연구팀이 미야기(宮城)현 사토하마 패총에서 발견된 야요이(彌生)시대 중기(약 2천년 전)의 인골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대륙계 이민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또 홍콩의 한 시사주간지는 '2천400년 전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이 배를 타고 일본 남단 규슈로 건너가 이민생활을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의 뿌리는 한국'이라는 주장들이다. 최근에는 일본 학자가 가나(假名) 문자의 원류가 고대 한국에서 사용됐던 구결(口訣)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 고문헌에도 각필(角筆)로 새긴 부호.글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던 도쿠시마 문리대학 고바야시(小林芳規) 교수는 11세기 초 고려판 초조 대장경의 각필로 쓰여진 구결은 그 수법이 가나와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고바야시 교수는 한국 고문헌의 각필이 한자의 획을 생략하거나 초서(草書)를 흘려쓰고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 등이 헤이안(平安)시대 초기 원시적 가나 문자의 제작법과 같다며 고대 문물이 한반도를 통해 전래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구결이 가나에 힌트를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작가 앙드레 말로가 생전에 일본이 국보 중 국보로 아끼는 '백제관음'을 보고 '만일 일본 열도가 침몰해 한 가지 비상반출이 허용된다면 서슴없이 백제관음을 택하겠다'고 한 말도 무엇을 뜻하는가. 그런데도 일본은 터무니 없이 날조된 역사관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즈음, 신판 '구다라나이'라는 말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해지는 까닭은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실망스럽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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