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차이산상봉

황병원-병렬 형제"50년전 의사가 됐다고 좋아하던 스물살의 동생이 이제 70대 노인이 됐구나"

30일 밤 서울 센터럴시티 6층 밀레니엄홀을 찾은 북측 방문단 인파속에서 공훈과학자인 동생 황병렬(71)씨를 첫눈에 찾아낸 형 병원(80·경북 안동군)씨는 이내 부둥켜 안고 소리내어 울었다.

50년 여름. 안동 출신으로 경북고(29회)와 경성의약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의대 부속병원에서 외과의사로 근무하던 병렬씨는 6·25전쟁이 터지자 인천육군야전병원으로 파견됐다. 밀려드는 부상병. 병렬씨가 속한 서울대병원 외과팀은 인민군이 목전까지 쳐들어 온줄도 모르고 부상병을 치료하다 모두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다.

병렬씨의 인생이 뒤바뀌었다. 전쟁 중에는 인민군 병원에서 군의관으로 진급했고 휴전 후에는 평양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의사와 대학 부교수로 50년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병렬씨는 "열심히 일했고 몸도 건강한데다 아들까지 황해도에서 의사로 재직중이어서 후회는 없다"며 "그러나 가족들과 헤어져 살아온 한많은 세월이 원망스럽다"고 울먹였다.

형 병원씨는 "경북도립병원 약사로 근무하던 지난 49년 동생이 의사가 되자 부모님들은 집안에 겹경사가 났다고 좋아하시던 모습이 선하다"며 "이제야 부모님들이 지하에서나마 두 눈을 감을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가족들은 준비해온 사진첩에서 꽃다발을 목에 걸고 해맑은 웃음을 짓는 병렬씨의 고교졸업사진을 뽑아 들고는 다시 울음을 쏟아냈다.

박진홍기자 pjh@imaeil.com

조민기-김필화씨 부부

"새색시때 헤어졌던 남편을 반세기 만에 만났건만 북에서 재혼을 했다니…"

시집온 지 1년만에 전쟁으로 남편 조민기(66)씨를 잃어버리고 50년을 홀로 살아온 아내 김필화(69·경북 안동시)씨와 유복자로만 여겼던 규석(50)씨.

예쁘게 꽂단장을 하고 초조하게 기다리던 김필화씨는 첫 대면에서 남편의 재혼소식에 한많은 세월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50년 안동사범학교 학생이었던 조씨는 17세의 나이에 인민군에 입대한 후 치열한 포항 기계전투에 참여했다. 수 차례 사선을 넘나들다 겨우 북으로 후퇴하게 됐지만 고향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었다. 인민군 활동이 동네에서 소문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있는 집까지 겨우 20리. 조씨는 눈물을 머금고 고향을 버린 채 2천리를 걸어 압록강까지 가야 했다. 이후 조씨는 40년 동안 군에서 복무하며 한국의 대령급인 대좌로 제대했다. 북에서는 아내와 모두 출가한 3남 1녀를 두었다.

나이 50의 중년이 된 아들 규석씨를 바라보는 조씨. 서먹서먹하게 커피와 단감 한 조각을 권하는 그의 눈에는 애처러움과 그리움이 묻어 나왔다.

조씨는 "아들을 기다리던 모친이 1년전에 돌아가셨다"는 가족들의 말에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다 "고향집에 감나무와 살구나무는 그대로 있느냐"며 지난 세월을 회고했다.

아들 규석씨는"아버님을 뵙게 돼 한이 없다"며 "이산가족의 고통은 안당해 보면 모른다"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박진홍기자 pjh@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