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차 이산상봉-평양

○…"2박3일간의 금쪽같은 시간을 안개 때문에 이렇게 허비해야 하다니, 50년을 갈라놓은 철책선만큼 평양의 안개가 야속합니다"

반세기만의 상봉을 앞둔 남북 이산가족들은 30일 당초 오전 9시에 이륙할 예정이었던 대한항공 특별기가 평양 순안공항의 짙은 안개 때문에 출발이 계속 지연되자 상봉이 늦어지는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 방북단원은 "이러다가 못가는 게 아니냐"고 불안해했고, 다른 방북단원은 "50년 기다렸는데 몇시간 못기다리겠느냐"며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30일 오전 10시 30분쯤 대한항공 815편에 탑승하기 시작한 남측 방문단은 출발 지연으로 2시간여를 기다린 탓인지 몹시 피곤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반세기만에 꿈에도 그리던 가족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설렘으로 다소 상기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당초 오전 9시에 김포공항을 출발할 예정이었다가 평양 순안비행장의 기상 상태로 인해 오전 10시, 오전 11시 30분으로 잇따라 지연되다 또다시 1시간 더 지연된다는 기내방송이 나오자 일부 방문단은 고향 가는 길이 더딘 데 대해 푸념과 한숨을 쏟아냈다.

○…남측 이산가족방문단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승용차 8대와 버스 7대에 분승, 숙소인 고려호텔로 출발했다.

방북단은 금릉동굴을 거쳐 금수산 기념궁전, 김일성 종합대학, 개선문, 만수대의사당, 노동신문사 등을 지나는 동안 거리를 지나가는 평양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러나 이산가족 교환방문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듯 평양시민들은 남측 방문단 차량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분위기였다.

차창 밖으로 보인 평양시민의 표정은 겨울채비가 한창인 듯이 보였으며 커다란 가방을 메고 바삐 움직이는 아낙네들이 눈에 띄었다.

평양공항의 공항 지상안내원 정명옥(20)씨는 이산가족들을 반기며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마치 우리 부모님이 내려오신 것 같습니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30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후 곧바로 공항응접실로 이동한 남측 이산가족 상봉단의 봉두완(奉斗玩) 단장 등 남측대표단은 허해룡 북한적십자회 부위원장 등 북측 일행과 함께 날씨와 향후 일정 등을 높고 40여분 동안 환담을 나눴다.

봉 단장은 이 자리에서 도착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북측에 성명서를 넘겨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봉 단장은 이날 평양 순안공항 안개 때문에 도착이 늦어진 것과 관련해 "평양사정 때문에 일정이 지체된 것 같다"고 말을 열었고 허 부위원장은 "안개가 낮 12시 넘어 걷혔다. 평양을 방문했던 나미비아 대통령도 당초 예정보다 3시간이나 넘겨 출발했다"고 공항사정을 설명했다.

○…30일 오후 4시 45분께부터 평양 고려호텔 2층과 3층에서 진행된 이산가족 단체상봉은 하나 둘씩 가족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울음바다로 변했다.

분단 반세기의 간격을 좁히려는 듯 가슴 가까이 가족을 끌어안는 가족들의 얼굴에는 상봉의 기쁨과 지나간 세월의 무상함이 동시에 교차했다.

이날 평양 공항 기상악화로 도착이 늦어짐에 따라 단체상봉 일정도 자동적으로 순연됐다.

고려호텔 2, 3층에서 동시에 진행된 단체상봉은 북측 가족이 상봉장 테이블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남측 가족이 상봉장에 도착하면 만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로 인해 만나기로 했던 가족이 늦게 도착한 북측 가족은 옆 테이블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초조한 빛을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남측 가족의 일련번호와 북측 가족의 테이블 번호가 일치하지 않아 가족을 찾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남북 적십자연락관은 이날 오후 상봉장을 현장 점검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문제를 협의하기도 했지만 워낙 일정이 지연된 탓에 북측 가족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배치도를 만들지도 못한 채 상봉을 진행했다.

○…단체상봉을 마친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은 30일 오후 7시30분께부터 인민문화궁전으로 이동해 량만길 평양시 인민위원장 주최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량 위원장은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 교환사업은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을 발양시키고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건배하자"고 제의했다.

봉두완 남측 방문단장은 답사를 통해 "일정이 늦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간에 맞춰 환대해 주신 북적 관계자 분들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날 중앙 테이블에는 량 위원장과 봉 단장을 비롯해 이종렬 남측 방문단 부단장, 전금진 내각 책임참사,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허해룡 조선적십자회 부위원장 등이 자리를 잡았다.

만찬장에는 모두 25개 테이블이 놓여 있었으며 한 자리에 8명씩 앉았다.

오리구이와 왕새우낙지묵, 삼색냉채, 돼지고기찜, 생선쌈구이, 참나무버섯볶음, 만두국 등이 주요 메뉴로, 20대로 보이는 남자 봉사원이 음식을 대접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