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3 "오늘은 어디가서 보내나"

"수능시험전까진 상전이었는데 이젠 학교서도, 집에서도 찬밥 신세예요"지난 1일 낮 12시 ㄱ여고 앞. 고3 학생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서성이고 있었다. 이들은 잠시후 동성로에 들러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이날 밤 9시 동성로 ㄷ백화점 부근 술집. 사복을 입은 고교생 4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모(18·ㄱ고교 3년)군은 "수능시험이 끝났고 논술을 준비할 성적도 안돼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러 왔다"며 "갈 데가 없어 결국 술집으로 왔다"고 말했다.

수능시험만 끝나면 고3들은 오전수업만 한다. 그나마 상위 20~30% 학생들은 논술시험 준비로 바쁘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고3생들은 대입원서를 접수하는 1월 중순까지 할 일이 없다. 대학입시 설명회나 고3을 위한 행사가 가끔 있지만 이들의 관심을 끌만한 프로그램은 없다. 학교와 교육청이 이들을 위한 수능시험후 프로그램을 마련하지 않고 방치해 일부 학생들은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탈선으로 치닫고 있다.

정모(18·ㅎ여고 3년)양은 "입시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어서 마음을 놓을 수도 없고, 마땅히 할 일도 없다"며 "원서를 쓰기 전까지 뭘 해야 할 지 막막하다"며 답답한 심정을 털어 놓았다.

이에 따라 나이트클럽에서 밤을 샌 뒤 술냄새를 풍기며 등교하는 학생들도 적잖다김모(18·ㄷ고교 3년)군은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술집이나 친구집에서 밤늦도록 술을 마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지 못하도록 청소년보호법이 규정하고 있지만 도심 및 대학가 술집이나 일반음식점, 레스토랑 등은 고교생인 줄 알면서도 받아주고 있으며 단속도 거의 없다는 것.

이들이 술집을 드나드는 방법도 다양하고 교묘해지고 있다. 주민등록증 검사에 대비, 주민증을 칼로 긁어 숫자를 바꿔넣고 친구끼리 돈을 모아 중고차를 구입한 뒤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이모(18·ㅇ고교3년)군은 "승용차를 몰고 가면 나이트클럽은 무사 통과"라며 "테이블당 2, 3만원이면 4, 5명이 맥주를 마시고 재미있게 놀 수 있다"고 말했다.

고3생들이 이처럼 거리를 배회하고 술집을 전전하며 방종과 탈선을 일삼고 있지만 이들을 지도·단속할 대책은 수년째 마련되지 않고있다.

ㅇ고교 3학년 교사는 "대학입시 설명회, 각종 청소년 행사 참가외에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며 "현재로선 사고나 저지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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