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농림장관의 苦行

2일 의성 경북농민대회에서 성난 농민들이 한갑수 농림부장관을 2시간여 동안 '억류'한 보기 드문 사태는 농가부채 해결 등 농민의 권익을 옹호해야 하는 농림장관에 거는 농민들의 기대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농림장관의 역할과 고뇌를 생각케 했다.

사태는 이날 전국적으로 짙게 깔린 안개로 꼬이기 시작했다.

당초 오전 10시쯤 도착해 의성군청에서 농민단체대표와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었던 한 장관은 안개로 비행기 이.착륙이 전면금지되면서 산림청 헬기로 행사장에 도착, 1시간 늦은 11시가 넘어서야 간담회가 열렸다.

그러나 이 시각은 의성역앞 농민대회가 열려야 할 시간. 간담회가 1시간여 소요되면서 기다리다 지친 의성역앞 5천여 농민들이 군청으로 몰려 와 군청을 에워쌌고 한 장관이 나올 것을 요구하며 트럭에 싣고 온 사과와 돌 팔매질이 3층 간담회장을 향해 시작됐다. 각목도 등장했다. 분위기가 험악해 지자 한 장관은 함께 온 한나라당 정창화 원내총무.농수산위 이상배.권오을 의원 등과 군수실로 몸을 피했고 이때부터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2시간여의 억류. 일부에선 "농민들을 대표하는 농림장관을 농민들이 적으로 보면 어쩌자는 말이냐"는 안타까운 얘기들이 나왔지만 군중 함성에 묻혀버렸다.

그러나 정작 한 장관은 이같은 상황에 그다지 초조해 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8월 초 취임당시 "농가부채를 해결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알고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밝힌 바 있었다.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을 감수하는 것도 같았고, 또 이렇게 내몰리는 상황 자체가 재경원, 기획예산처 등 돈줄을 쥐고 있는 부처로부터 농림장관이 힘을 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나름의 계산도 작용한 것 같기도 했다.

안개는 걷혔고 한 장관은 "장관직을 걸고 연내 농가부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투사적' 약속을 하고 상경했다.

배홍락기자 bh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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