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家臣 후퇴론과 정치개혁

소위 국정의 위기를 맞아 김대중 대통령은 주위로부터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언로가 막혀있다는 지적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이번의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많은 '직격탄'이 쏟아졌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일단은 먼저 여당이 바뀌어야 정치가 안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중 우리의 주목을 받는 것은 동교동계의 후퇴론이다. 비록 시중의 루머를 인용하기는 했으나 권노갑 최고위원을 YS시절의 김현철과 비유한 것은 그 건의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그리고 초선의원 그룹들도 같은 내용의 건의서를 작성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몇몇 가신들이 대통령의 귀를 막고 있고' '당이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몇몇 측근의 사선(私線)에 의해 움직인다'는 등이다.

비록 이들의 주장 뒤에는 보이지 않는 여당내 권력투쟁이 숨어있다는 설이 있으나 어떻든 이들의 주장에 상당한 국민적 공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국민이 느끼고 있는 여당의 정치는 맹목적인 충성경쟁이기 때문이다.

대화와 타협이 없는 정치 현실도, 모든 것은 완승주의로 나가려하고 있는 현재의 여당 정치스타일도 모두 충성경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무슨 일이 터지면 어거지로 때우려하고, 때로는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기까지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 판단하여 보면 여당의 개혁은 인물개편으로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물개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시스템에 의한 정치 운용,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행동양식 등 민주적 정치스타일이 정착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정쟁이 대체로 대화와 타협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치의 하드웨어 개혁보다는 정치의 소프트웨어 개혁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람을 바꾸어도 대화와 타협이 없는 지금의 정치스타일을 계속한다면 민주주의 정착은 물론이고 정치의 안정을 이룰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동교동계 후퇴론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주장일 뿐이며 또 여당내의 사정이다. 따라서 인물을 후퇴시키느냐 아니면 교체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여당의 결정과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책임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는 인물후퇴로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나 더욱 중요한 것은 정치소프트웨어의 변화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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