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친지끼리 강냉이 술 망년회

Y2K(컴퓨터의 2000년 연도인식오류)다 뉴밀레니엄 맞이다 해서 그 어느해보다 요란스레 다가왔던 2000년도 벌써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제2의 경술국치'라는 IMF관리체제때보다 결코 나아진 것 없는 국가경제 때문에 서민들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지만 학교앞 문구점 좌판에 전시된 연하장과 크리스마스 카드는 또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호사가들은 벌써 송년회 준비에 들어갔고, 경찰도 음주운전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단속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의 연말 표정. 그러면 올들어 훨씬 가깝게 다가온 북한의 연말연시 모습은 어떨까.

최근남(27·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씨 등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도 우리들처럼 연말이면 송년회(북한에서는 망년회라 주로 부름)를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송년회 건수가 여러개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가까운 친구나 직장 동료가 아닌 사람과는 거의 송년모임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인의 경우는 직장내 같은 부서원들과, 협동농장 종사원은 작업반 동료들과 송년회를 한다.

송년회는 주로 12월25일 이후 31일까지 저녁시간을 이용해 부서장이나 세포비서(말단 당책임자) 집, 또는 설(양력 1월1일)을 앞두고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선물을 받은 직원 집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협동농장의 경우 농장 사무실에서 하기도 한다. 음식점을 빌려 송년회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송년회 장소는 당연히 집이라는 인식이 강할 뿐 아니라 음식점도 그리 많지 않은 탓이다.

음식은 참석자들이 필요한 만큼 돈과 쌀을 내 마련하는데 차려지는 음식은 떡, 돼지고기, 콩나물요리 등이다. 술은 집에서 만든 도토리술이나 강냉이술을 먹는다. '병술'(공장에서 판매용으로 만든 술)은 너무 귀하기 때문에 우리들처럼 다른 종류의 술을 섞어서 마시는 폭탄주는 없다. 흥이 오르면 젖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며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녹음기를 갖춘 가정이 많지 않아 가요테이프를 틀어놓고 사람들은 한정돼 있다고 한다. 취중에서라도 당 시책이나 체제를 비판하는 말을 하면 욕을 보기 때문에 대화내용은 신변잡기가 주를 이룬다.

크리스마스 카드는 전혀 없지만 새해를 앞두고 연하장을 보내는 것은 우리보다 더 생활화되어 있다. 북한 주민들은 떨어져 있는 부모에게는 물론이고 스승, 친구, 친척들에게 연하장을 보내지 않으면 큰 결례를 범하는 것으로 여긴다고 한다. 또 연하장을 받으면 답장하는 것이 당연하고, 손윗사람의 경우도 연하장을 보낸 아랫사람을 만나면 잘 받았다고 인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연하장은 우리의 엽서 형태로 제작돼 12월초부터 우체국에서 판매된다.

이틀 연휴가 주어지는 설 연휴때 학생과 직장인, 군인 등 북한의 모든 주민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일은 언론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공동사설(김일성 주석 생존때는 신년사)을 숙지하는 것. 연휴가 끝나면 각 단위별로 공동사설 내용을 놓고 토론회를 갖기 때문에 완전히 머리 속에 넣지 못하고 있으면 비판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송회선기자 thesong@imaeil.com

최재수기자 bio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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