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좁고 할 일은 없다'. 지금 대학생들의 사회에 대한 소감은 이럴 것이다. 졸업한들 마땅히 취직할 곳이 없고, 일자리를 구한다해도 우선 위기를 피신하는 곳이거나 아르바이트가 대부분이다. 빨리 학교를 떠나는 것이 미덕인 때도 있었지만, 요즘 대학생들은 졸업하기가 겁난다고들 한다. 졸업하자마자 무직자가 되는 그 처량한 길을 걷기보다는 차라리 학생 신분으로서 좀 더 나은 세월이 올 때를 기다리고 싶은 심정이다. 지방대학일수록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국내의 경제적 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전국의 대학에서 휴학생 또한 급증하고 있다. 학생들이 줄어든, 더욱이 '미래'에 기죽어 썰렁한 강의실 풍경은 교수들의 강의 의욕을 떨어뜨리게 하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그 착잡한 분위기를 구원하는 것은 대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겠지만, 사회도 대학도 교수도 당장 그것을 속 시원히 눈앞에 내밀 수가 없다.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취업난이 대학의 학부생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대학원생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학원생들도 암담한 채로 학문에 임하고 있다. 먹고 살 걱정은 뒤로하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하며 그들을 종용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경제적 위기상황 속에서 학문보다 우선 '취업'이라는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인 것이다. 서울의 어느 명문 대학원 정원미달 사태는 그 좋은 예일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대학 내부에 좀 더 눈을 돌리면 사정은 한층 심각하다. 지금 서울이든 지방이든 박사학위를 취득한 엄청난 고급인력들이 갈 곳이 없다. 각 대학의 학과마다 최소한 10여 명의 국내외 박사학위 취득자인 시간강사들이 있다. 이들이 '마음놓고' 활동할 곳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과 '학자적 자존심'을 지켜줄 어떤 제도적 장치마련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공동연구이든 대규모 번역사업이든 지혜를 짜내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지금까지 대학은 물론 정부에서는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는 차원에서 고급두뇌들을 활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조치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못했다. 이런 말을 하면 당국자들은 당장에 '그럴 돈이 어디 있느냐?'고 하겠지만 실제 그 고급인력들의 처우 개선에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박사학위를 받아도 별 뾰족한 수 없이 평생 시간강사로만 살아가야 한다는 불안감은 학문 후속세대, 그리고 학문 그 자체의 존립에 균열을 가져오고 결국 대학의 붕괴를 부추길 것이다. 어느 특정 시기에 적어도 어떤 한 분야나 영역에 대해 체계적이며 집중적으로 배우도록 한 곳이 우리 나라 대학의 '학과'였다. 이른바 '학부제'라는 것이 지금 이런 매력 있던 학과를 다 먹어치우고는 있지만, 실제 학과의 이념조차 우리사회에서 옳게 실현되었는지는 의문스럽다. 대학 교육의 방황, 대학강단의 매력 상실은 지금까지 우리사회가 그나마 어렵게 축적해온 지적인 재산을 외세에 잠식되도록 방조하는 격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대학은 할 일이 많다. 강단은 성(聖)과 속(俗)이 둘이 아니라는 목소리를 탄력있게 껴안으면서 열심히 제 길을 걸어가야 한다. 거기엔 밤낮 연구실의 불을 밝히는 '젊음'이 있어야만 한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우리 대학들은 주로 그 '입구'에만 신경을 쏟았지 '출구'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왔다. 입시에는 대단한 신경을 쓰면서도 졸업 후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비교적 결여돼 왔다는 말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한 관심이 없었다. 그럴수록 대학은 학생 스스로 자신의 개성·재능을 찾아내도록 도와주고, 동시에 사회에 나가서 그것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안내하며, 각종 자격을 충분히 구비하도록 하는 등의 제도적 후원을 해가야 한다. '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라는 발상의 전환과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젊음이 표류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그야말로 대학과 사회의 직무유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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