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이태수 논설위원

18세기 영국 해군의 가장 큰 고민은 정체불명의 괴질이었다고 한다. 잇몸에서 피가 나고 관절이 아프다가 죽는 선원들이 잇따랐다. 몇 년 동안 육류와 곡류만 먹고 채소나 과일을 먹지 않아 '비타민C 결핍증(괴혈병)'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군의관 제임스 린드가 1747년 레몬을 공급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됐다. 그러나 지금처럼 복용하기 좋은 알약으로 합성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흐른 1930년대에야 가능했다.

비타민 가운데 몸 속에서 수분기가 있는 곳에서만 활동하는 비타민C는 항산화제로 세포를 젊게 지켜주는 데 효과가 크다고 한다. 하지만 많이 먹어도 저장되지 않고 소변을 통해 배설되므로 한꺼번에 많이 먹는 것보다는 하루 3, 4회 나눠 섭취하는 게 좋다는 분석도 나와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 효능에 대한 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영양제일뿐 치료 효과는 검증된 바 없는 실정이기도 하다.

최근 새삼스럽게 '비타민C 열풍'이 일고 있는 모양이다.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서울대 이왕재 교수가 '비타민C를 많이 섭취하면 면역력이 증가하고 고혈압·중풍·심장병 등에 치료 효과가 있다'고 하자 약국마다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일부 약국에는 주문 양이 평소의 20, 30배가 되는가 하면, 사재기를 하려는 고객들도 극성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음양(陰陽)이 있는 것처럼 우주의 구성 요소는 본질적으로 상대적이고 상호의존적이다. 비타민C의 경우도 예외일 수는 없다. 요즘 EBS 동약의학 강의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한의사 김홍경씨도 '비타민C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처럼 얘기하지만, 뚱뚱한 사람을 더 살찌게도 한다'고 꼬집었다. 좋은 것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좋기만 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다고 본다.

우리 민족의 근성은 빨리 달구어지고, 빨리 식는 '냄비'에 비유되기도 한다. 시류와 유행을 좇아 앞뒤를 안 가리고 몰려가는 들쥐와 닮았다고 비하되기도 했다. 그러나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존스 회장이 "나는 한국이 두렵다"라는 책에서 한국병으로 불리는 이 '냄비 기질'이 되레 정보화를 앞당기는 '성공의 열쇠'라고 예찬한 바도 있다. 우리에겐 '냄비 기질'의 부정적인 면을 줄이는 지혜가 요구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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