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오! 이탈리아-일그러진 가정사

"이탈리아 간다니까 친구들이 뭐라던가요?" 북부 몬사에서 유리 공장을 경영하는 도메니코 콜리아티(37)씨는 호기심으로 눈을 빛냈다. 이탈리아 남성에 대해 들은 얘기가 없느냐는 것.

"이탈리아 남성들은 미남인데다 패션 감각이 뛰어나고 바람둥이가 많아 여성들이 조심해야 한다더군요". 기다리던 답변을 들었다는 듯, 그는 흐뭇해하며 자기 아내에게 으스댔다. "역시 이탈리아 남자가 최고야".

이탈리아 남성들은 자신이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의 후예라는 사실을 은근히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68세나 된 세르지오 오솔리니씨도 조금 친해지자 "나를 조심하라"고 기자에게 즐겨 농담했다.

그러나 현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탈리아 남성들이 오히려 카사노바의 '후광'을 업고 유명세만 누리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거리 곳곳을 돌아 다녀도 멋있는 남성을 만나 보기는 쉽잖았다. 흔히 보는 남성들은 체격조차 우리나라 남성들과 비슷했다. 영화 속의 서양인들처럼 키가 훤칠하게 큰 경우는 드물었다.

옷 입는 패션 감각도 그리 뛰어나 보이지 않았다. 이런 느낌이 틀리지 않았음은 패션 디자이너인 파올로 파가니(45)씨가 확인해 줬다. "밀라노 브레라 거리 인근에 가면 패션.광고업에 종사하는 멋있는 남성을 볼 수 있지만, 일반 거리에서는 평범한 캐주얼 차림의 남성들이 대부분이지요".

오히려 알려진 것과 반대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일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은 젊은 남성들의 대머리. 특이하게도 이탈리아 남성들은 젊을 때부터 대머리가 많아 실제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앞이마가 많이 벗겨진 도메니코 콜리아티(37)씨는 자신의 나이를 맞춰 보라길래 "45세쯤 돼 보인다"고 했더니 놀라서는, 만나는 사람 마다 붙잡고 농담처럼 그 얘기를 늘어 놨다. 군대 제대 후 계속 까까머리를 하고 있다는 피에트로 테라니(26)씨는 "젊은 나이에 흉하게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 보다는 완전히 밀어 버리는게 보기 낫지 않으냐"며, "까까머리가 많아 직장생활에도 지장이 없다"고 했다.

또 이탈리아 남성 중에는 마마보이가 많은 것도 특징으로 보였다. 현지어로 맘모네(mammone)라 불리는 마마보이가 이탈리아에 많다는 것은 이미 유럽 전역에 정평이 나 있었다. 다른 유럽 남성들은 보통 대학에 진학하면서 부모와 떨어져 살기 시작하지만, 이곳 남성들은 40, 50세가 돼도 결혼하기 전엔 부모와 함께 사는게 보통이었다. 식사.빨래.청소 등을 '엄마'에 기대는 것은 물론이다.

역시 미혼인 누나와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산다는 알베르토 가나(40) 총각은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퇴근해서 바로 집으로 가 부모님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밀라노 공립대 대학생인 귀도 지로니(25)씨는 "여기서는 학생들이 보통 집 근처 대학으로 진학하기 때문에 부모와 계속 지내는 경우가 많다"며, "그 때문에 어머니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했다.

지로니씨는 얘기 도중에도 "엄마가 최고"라는 얘기를 자주 했다. "아들이 나이 들어도 엄마는 엄마"라며, "나는 아기나 마찬가지"라 말하기까지 했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맘마(mamma, 엄마)라 부를 정도이다 보니, 어머니의 영향력이 커져 결혼 후 고부 갈등 역시 우리 보다도 더 심각하게 겪는 것 같았다. "시어머니의 지나친 간섭으로 불화를 겪다 이혼한 젊은 부부를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고부 갈등으로 인한 이혼율을 낮추기 위해 '시어머니 학교'를 여는 이혼 전문 변호사까지 있죠". 아들을 결혼시켜 내 보낸 후 혼자 살고 있다는 안나 콜리아티(61) 할머니가 전한 얘기이다.

IBM에서 오래 근무했다는 파올로 스코파치(68)씨는 "내가 알고 지내던 부부의 절반이 헤어졌을 정도로 이혼율이 높다"고 걱정했다. 예전엔 자식도 7, 8명까지 낳았으나 지금은 하나만 낳고 마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약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유럽 여성들 사이에선 "이탈리아 남성과 결혼하면 안된다"는 말까지 있다고 했다. '맘모네'가 많아 아내 역할에 엄마 역할까지 도맡아야 하는 것이 싫다는 것. 일간신문 '프리알피나'에서 근무하는 여기자 로시 브랜디(37)씨는, "맘모네 남성들 중에도 결혼 후엔 가장의 권위 확립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질적인 주도권은 여전히 주부가 쥔다"고 말했다.

출산 휴가를 얻어 집에서 쉬고 있던 주부 실비아 콜리아티(30)씨는 이와 관련해 다소 독특한 풀이를 해 보이기도 했다. "여성은 육감(六感)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남성보다 보는 눈이 더 넓어요. 남편과 의논하기는 하지만 집안일은 대체로 내 스스로 결정하는 편입니다".

올해로 결혼 28주년을 맞은 마르코 세르비디오씨 부부는 서로를 부르는 애칭이 특이했다. 남편은 아내를 '보스'라고, 아내는 남편을 '아가'라고 불렀다. 실제로 그는 같은 회사에서 아내를 상사로 모시면서 아내가 시키는 일을 따라하는 처지였다밀라노 공립대 마르코 디 프리스코 교수는 "변화가 늦은 남부엔 옛날식 사고가 많이 남아 있지만, 북부에선 남편이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많지 않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내가 돈 관리를 도맡아 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하고 좋다고 했다.

유럽에 속해 있으면서도 가정사까지 우리와 닮은 이탈리아. 그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탈리아 남성들의 모습이 그래서 오히려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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