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국 현대문명 보고서

미국 롱 아일랜드의 파이어 섬과 플로리다의 프라야린다 비치는 누드 해변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많은 누드주의자들이 매년 이 곳을 찾아 원초적 모습으로 일광욕을 즐긴다. 그러나 인근 주민들은 누드 해변이 자녀들의 정서에 좋지 않다며 거센 항의를 하고 누드 해변 존치 여부가 끊임없이 논란을 빚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누드주의자들도 보수파와 진보파로 나뉘어 보수파들은 누드 해변을 지정, 그 곳에서만 벗고 생활하자는 입장이고 진보파들은 어느 곳에서라도 '벗을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미국 현대문명보고서-게이 레즈비언부터 조지 부시까지'(박영배·신난향 지음, 이채 펴냄, 400쪽, 1만2천원)는 정치, 사회, 교육, 문화 등 미국의 단면들을 구석구석 조명하며 그 문제점과 저력을 들추고 있다. 세계의 최강국이자 합리적 제도와 문명으로 모범이 될 만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 미국이 여러 문제점들을 안고 있으며, 그 문제점들로 인해 갈등과 충돌이 끊이지 않으면서도 강점을 발휘하는 이유들을 살피고 있다.

미국의 동성애자들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 역사는 30여년에 불과하다. 60년대말 기존 체제에 반항하는 의식이 싹트면서 사회적으로 냉대받던 동성애자들은 월남전 반대, 여성해방 운동 등과 결합해 목소리를 높여갔다. 힘겨운 투쟁의 결과 오늘날 그들의 권리와 자유를 어느 정도 인정받게 됐지만 중부지역 보수층의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여전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동성애 권리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민중들의 저항정신, 인권을 추구하는 리버럴리즘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적 바탕이 미국의 숨은 힘인 것이다.

이 책은 이외에 돈과 로비, 섹스로 이뤄지는 워싱턴 정가의 부패한 정치상을 들추면서도 합리적 입법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설득과 타협의 문화를 강조하고 성희롱과 어린이 추행 등 남성 중심의 비합리적 문화와 사회적 문제가 논란이 될 때마다 치열한 토론을 거쳐 대안이 마련되는 과정을 언급한다. 지명(地名)을 통해 본 미국의 지역성과 역사, 미국식 영웅주의의 터전인 텍사스 사람들의 삶과 의식, 미국 주부들의 살림살이, 소수 엘리트를 키우는 교육제도 등도 검색의 대상이다.

미국의 문제와 해결방식은 미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동성애자와 여성 등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 정치구조의 시급한 개혁, 사회와 교육제도의 개선, 시민의식의 함양 등 풀어야 할 여러 과제들에 대해 참고사례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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