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나라 언론대책

99년 10월말 우리 정치권은 '언론장악 문건' 파문으로 발칵 뒤집혔다.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는 여당 지도부의 '본 적도 없다'는 해명에도 "언론 장악 문건 사건의 주체는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김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 13개월 뒤인 12일 한 언론에는 한나라당의 '향후 주요업무 추진계획'이라는 A4용지 8매 분량의 문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2002년 이 총재의 대선 승리를 위한 전략을 담은 것으로 정당이라면 당연히 작성할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언론사 논설 집필진 성향 파악 및 관리방안'이라는 제목의 "우호적 언론인은 조직화하고 적대적 언론인에 대해서는 비리 등 문제점을 축적, 활용한다"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언론인을 네편, 내편으로 가르고 '내편'은 패거리를 만들고 '네편'에 대해서는 뒤를 캐겠다는 발상이었다.

이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한나라당 기획위원회의 책임자인 맹형규 의원은 즉각 "작성한 적도 본 적도 없다"고 진화에 나섰고 이날 대구에 내려온 이 총재도 "누군가가 습작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권철현 대변인은 "실무자가 아이디어 차원에서 만들어본 문건"이라고 불끄기에 바빴다.

이날 한나라당이 보여준 모습은 13개월전 민주당(당시 국민회의)의 허둥댐을 재현하는 듯 했다. 여당의 이 총재 사과요구 공세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언론장악문건' 파문은 국가정보원이라는 최고의 국가 정보기관 이름까지 들먹거린 사건이었고 집권당 인사가 개입됐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이 총재의 2002 대선 승리 가능성이 점점 높게 나타나고 이 총재 주변의 기대치도 최고조에 달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야당의 문제라고 가볍게 지나칠 일은 아닌 것 같다.

파문이 확산되자 한나라당은 소나기를 피해 가려는 작전인지 13일 태도를 바꿔 습작품이라고 강변하던 이 총재가 직접 나서 유감을 표명했다. 그래도 뭔가 모르게 개운치는 않다.

정치1부 이동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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