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아직도 체념할 수 없는 까닭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기대와 설렘으로 맞았던 새 천년, 새로운 세기의 첫 해가 어느덧 저물고 있건만 우리 사회의 어디를 둘러봐도 아우성 소리 뿐이다.

정치는 제자리걸음이거나 뒷걸음질을 하고, 경제는 갈수록 암담한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기업들이 무더기로 쓰러지고, 금융은 막대한 공적자금에도 밑 빠진 독이며, 공기업들의 이면합의설이 파다하다. 이젠 농민들까지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고, 실업자와 노숙자들은 거리를 헤매는가 하면, 대학들도 휴학 사태로 몸살을 앓는 등 교육이 뿌리째 흔들리고, 문화마저 시장논리에 목이 죄어 있는 모습이다.하지만 정치권과 고위공직자, 기업인 등 기득권층은 진정한 변화와 개혁, 새로운 질서와 가치 창조의 의지를 보이기는 커녕 '말 따로 행동 따로'를 거듭하고 있다. 이 나라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슬기로운 목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날이 갈수록 사회 곳곳에서 썩는 냄새만 진동하고, 거짓말들이 날개를 단 채 비판과 도전의 돌멩이가 날아드는 데도 지도층과 기득권층은 앞장서서 반드시 치유해야 할 고질병들을 오히려 계속 덧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더구나 근래에는 '가신 정치'와 '패거리 짓기'가 더욱 노골화되고, '충성 경쟁'이 출세의 지름길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 때문에 윗물부터 썩을 대로 썩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단으로 치닫는 가운데 힘 없고 돈 없고 '빽'도 없는 서민들만 희생을 강요당하는 세태다.

노골화되는 충성 경쟁

집단 또는 개인 이기주의는 또 어떤가. 그 강도가 날로 더해 이 사회가 어디로 가든 자기 이속 챙기기에 눈이 어두워지고, 지연과 학연 등으로 얽히고 설켜 자기 아성 쌓기, 줄서기와 패거리 짓기, '눈 가리고 아옹'식의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현실이지 않은가.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우리는 적지 않은 기대도 하고,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인내심을 키워오기도 했다. 그러나 새 정부는 그간 과연 어느 정도 기대치에 부응했는지. 정직과 검소, 투명성과 진실성, 변화와 개혁은 헛구호요, 허공의 애드벌룬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말이기만 할까. 과거보다도 더 심각한 지도층의 대형 비리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가 하면, '만사'라 하는 '인사'가 '망사'로 이어져 어린이들까지도 정치를 믿지 않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는가.

한동안 성장하는듯 했던 경제가 계속 곤두박질한 것도 무엇 때문이었는가. 경제를 살리려는 목소리가 공전만 거듭하는 가운데 지도층 인사들은 이 사회에 국가의 장래보다는 집단이나 개인의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는 풍조를 심화시키는 데 이바지해온 것은 아닌지. 상상도 하기 싫은 각종 사건들이 사흘이 멀다 하고 잇따르고, 학생이 학교 가기가 무서워 사설 경호원을 대동하고 등교하는 사태를 어떻게 풀이해야 옳을지.

도덕성 회복에 마지막 기대

한 언론인이 지적했듯이 우리 사회는 이제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케 하는 '악과 악의 연쇄기'로 묶여져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길로 나아갈 전망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도층이나 기득권층부터 악과 악, 부도덕과 부도덕이 손을 맞잡는 분위기를 떨치지 않고, 우리 모두의 이익을 지향하는 지혜를 일으켜 세우지 않는 한 '절망 이민'도 계속 늘어날 것이며, 가계 사정이 말이 아닌 서민층은 패배주의와 허무주의, 냉소주의의 수렁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될는지도 모른다.

이 총체적 위기의 시대를 극복하려면 우리 모두가 나서 지도층과 기득권 세력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를 확산해 나가는 지혜가 절망을 희망으로 변용시켜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지금도 마음은 왜 더 무거워지기만 하는 것일까. 정부의 도덕성.공정성.투명성.신뢰성.계획성 회복,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위기를 뛰어넘으려는 강한 의지와 지도층.기득권의 자성에 대한 기대감을, 어떤 시인의 절규처럼, '아직도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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