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별기고-부시와 아시아주의

미국은 종교·정치의 자유를 찾아 이민 간 사람들이 세운 나라이다. 정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경제적으로 먼저 독립하려 했다. 따라서 미국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상황변화에 적응하는 프라그마티즘의 행동방식을 갖고 있다. 건국이념도 경제 우선주의이다.

그 결과 미국에는 이데올로기 정당이 없다.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정책 차이는 있으나, 시대, 국제 정치상황, 대통령의 성향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부시 대통령 당선자의 정책 기조는 클린턴의 유화정책과 차별화한 것이다. 국가이익을 위해 강한 미국과 강한 군사정책을 강조하며 국민 감정에 호소했다. 그때문에 동북아 긴장 완화 및 한반도 화해 추세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모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동북아의 지금은 과거와 달라 군사대결을 강조할 상황이 아니다. 또 과거에는 미국이 동북아 국제정치 상황을 결정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곳 상황변화에 적응해야 할 분위기이다. 때문에 부시는 자국 이익을 위해 동아시아에 압력을 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성인 그의 선거공약이나 정책은 1, 2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그 후 동아시아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그는 북한 미사일을 빌미로 NMD(국가미사일방위) 계획 추진을 주장했다. 실제로는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선택한 강력한 군사정책이다. 그러나 지난 6월 남북한 화해가 이뤄져 NMD도 뒤따라 논리적 근거를 잃었다. 게다가 NMD를 강행하면 중국·러시아·유럽 등과의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다.

통상 분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유무역과 시장개방 압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국가들은 아직도 대부분 IMF사태 때와 비슷한 상황에 있다. 이런 나라들에 또다시 시장개방을 강력히 요구한다면 이쪽 국민정서만 나빠질 것이다. 부시는 이런 사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여기서 일반이 덜 주시하는 또다른 한 면을 주목코자 한다. 그것은 아시아가 그 자체로 형성하기 시작한 일종의 생명력이다. 미국의 새 정부가 이것과 어떻게 조화를 이뤄 나갈 것인가가 관심의 주내용이다.

우선 주목할 것은 경제부문에서의 '아시아주의'이다. 1997년에 시작된 IMF 경제위기는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대미 불신을 불렀다. IMF 개혁 요구까지 나왔다. 1998년 열렸던 콸라룸푸르 APEC 정상회의에선 드디어 미국이 창설을 주도한 APEC의 목적 논쟁까지 벌어졌다. 클린턴은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럴 즈음 '아시아주의'가 생겨났다. ASEAN(아세안)은 창설 30주년을 맞아 1997년에 한국·중국·일본의 정상들을 초청, 'ASEAN+3' 정상회의를 만들었다. 이 'ASEAN+3'은 작년에 '아시아 공동시장'으로의 발전을 희망하기에 이르렀으며, 일본의 제안에 따라 한·중·일 정상들이 그 공동연구에 합의했다.

1998년에는 한국과 일본의 자유무역 지역화 혹은 경제통합이 제안됐다. 성공하면 중국을 포함하는 (한·일)+중 자유무역 협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9월 열렸던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한일 자유무역 협정이 처음으로 의제로 대두됐다. 일본이 제안한 한·중·일 경제협력, 한일 자유무역 협정 등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시아적 가치'도 새 미국 정권과 마찰거리가 될 수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보편적(유럽적) 가치를 앞세우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아시아 경제를 지배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동아시아 국가들, 특히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IMF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다시 미국의 보편적 가치에 눌려 힘을 쓰지 못하게 됐지만, 지난 5일 한국의 서울대, 중국의 베이징대, 일본의 도쿄대, 베트남의 하노이대 등 총장들이 아시아적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세계적인 학문으로 끌어 올리기 위한 공동연구에 합의했다.

유교문화권의 통합은 미국이나 유럽 문화권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다. 아시아적 가치의 정립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가 부닥뜨리게 될 새로운 국제상황임에는 틀림없다.

이쯤에서 필자는 잠깐 일본의 동향에 주목해 두고 싶다. 일본은 아시아 정책을 실행하는 미국의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한반도 정책은 드물잖게 일본을 지렛대로 구사돼 왔다. 동북아에 대해서도, 일본으로 하여금 아시아 대륙을 상대케 하는 것을 주요 패러다임으로 해 왔다.

100여년 전에도 마찬가지여서, 1900년에는 중국에서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문호개방 정책을 이용했던 반면, 1905년에는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맺어 일본을 한반도에 진출시킴으로써 아시아대륙과 적대관계가 되도록 한 뒤 자신은 필리핀을 취했다.

오늘날 한반도 국제 상황은 19세기 말 그것과 유사하다. 중국의 군사적 봉쇄를 위한 NMD, 역시 중국 봉쇄를 위해 북한 위협을 빌미로 1997년에 맺은 미·일 방위협력 지침 등은, 일본과 함께 아시아 대륙에 간섭하는 직접적 형태이다. 간접적 형태는 일본의 한반도정책을 통해 관철되며, 이때 일본은 미국의 지렛대이자 주변이다.

이렇게 보면 미 대통령 당선자의 한반도 정책은 일본을 통해 확인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 그럴 경우 일본이 지금 동북아에서 도모하고 있는 여러 정책들도 또다른 시각에서 분석할 필요가 생길 수 있다.

어쨌든 탈냉전 시대의 한반도는 단순하던 냉전시대와 달리 서로 모순되는 것들이 만나 다양성과 복잡성을 띠기 시작했다. 미국의 새 대통령, NMD, 미·일 방위협력 지침에 의한 군사적 긴장, 신자유주의 경제, ASEAN+3의 아시아 공동시장 문제, 한일 자유무역 협정, 한·중·일 경제협력에서의 중국·일본의 갈등 가능성, 유럽적(보편적) 가치와 아시아적 가치의 갈등, 남북한 화해 등이 그것이다.

변화의 시기에는 더욱 치밀한 주의가 필요하다. 미국의 새 대통령 정부 역시 우리가 살필 것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김우현 교수

△1976년 독일 베를린 Freie대학 정치외교학 박사

△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주요저서

'지정학으로 본 환태평양 협력기구 구상과

한·미·일 협력 체제'(1985)

'극동 분수령--한반도 민족공동체의 국제적 사명'(1989)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의 세계 문화와 지역문화들'(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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